X레이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연골이 이렇게 다 달았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라며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뚜드려 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장의 울림이 잠시 멈추었다.엄마는 오랫동안 무릎이 아파 고생하셨다. 관절염이라는 놈이 무릎에 들어와 병원에 수시로 다녔다. 2~3년 전부터 자꾸 다리가 오다리가 돼가는 걸 보면서도 “아이고! 우리 엄마가 자꾸 늙어 가시네. 우짜노”란 생각만 했다. 병원에 모시고 가 근원적인 치료를 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께 전화
다행히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췄다. 옆 차로 다가가 경적을 울리니 운전자가 뭔 짓이냐는 듯 쏘아본다. 손을 내밀어 차 문을 열어보라 시늉하니 여전히 마땅찮은 표정으로 유리창을 내린다. “바퀴 펑크 났어요. 계속 달리면 휠도 망가지고 위험해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놀란다. 갓 스무 살을 넘은 듯 보이는 운전자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꼭 그 탓만은 아니었다. IMF와 더불어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멈출 줄 모르고 내리막길을 달렸다. 고민 끝에 사업을 정리하고 남편은 새로운 일을 찾아 서울로, 나는
동지섣달 차가운 밤하늘에서 고요한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공연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바흐의 소나타 선율로 장식하듯 세밑의 차가운 밤은 유장한 달빛으로 출렁대면서 차분한 고요로 젖어 들고 있다.세상이 온통 코로나 역병으로 짓눌려있었음에도 세월은 또 여지없이 흘러간다."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오고, 그대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며 낙엽은 지더라."어느 가수의 애절한 노랫말이 가슴을 파고드는 밤이다.암울했던 한해였지만 내가 지나온 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머물렀던 때는 어디쯤이었을까. 돌아보니 가장 찬란하다고 느끼던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네모의 꿈’이란 노랫말이다.20여 년 전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학교의 구조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네모난 교실 모양과 크기, 일자형 복도, 교탁을 보고 일렬로 앉는 좌석 배치, 딱딱한 책상과 걸상, 교실과 분리된 운동장 등 어느 동네 어느 교실을 가나 천편일률이다.그런데 요즘 이런 학교 구조에 대한 반성으
49만 3433명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자주 변하는 대입제도의 영향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으니 실제로 고3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다. 수능시험 이전부터 소소하게 합격자가 발표되고, 수시·정시·추가모집까지 충원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대입 최종 마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3월 말쯤에 끝난다고 한다.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528명이 응시한 우리 학교 시험장에서는 특이 사항 없이 순조롭게 시험이 치러졌다. 발열 체크, 책상 가림막, 마스크 등 예년에 없던 절
어느덧 이십년의 시간이 지나갔다.새천년을 한 해 앞둔 초 가을날 문학이란 뜨락에 주춧돌 하나 얹고 작문의 첫걸음을 떼어 놓던 그날의 감정들을 되돌아본다. 점점 멀어져가는 청춘 앞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가던 그즈음 먼 꿈으로만 알던 수필작가란 또 다른 삶을 향해 걸어가던 그 길은 신성했다.수필 한편을 써서 문학교실로 달려갈 때마다 땅바닥에 뭉개져 있던 자존감이 우뚝우뚝 살아나는 것을 실감하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희열이었다. 꿈을 향해 살아난 열정과 굼틀대며 솟아나는 감성의 조우는 내게 행복한 충격이었다.흩어졌던 삶의 편린들을 한 조
엄지 양옆에 도드라진 살이 눈에 걸린다. 어느 틈엔가 생긴 굳은살이다. 거칠고 메마른 손에 보습 크림과 오일을 수시로 발라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살은 여기저기 스치다 종국엔 거스러미가 된다. 돋보기를 쓰고 제거하지만, 손톱 주변이 쥐 파먹은 듯하다. 그러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손을 만져본 사람은 한결같이 '집안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이다. 돌아보니 깔끔을 떠는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다.정리벽이 남긴 굳은살이다. 열심히 일하는 손이 예쁘고, 놀고 있는 게으른 손은 밉다는 말과 '죽으면 흔적 없이 사라질 몸인데 무얼 아
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멀지않은 곳에서부터 점점 어둠이 물들어오더니 순식간 그 안에 나를 가두고 말았다. 사위를 좁혀오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혼자 있는 순간이 아늑한 품속에 든 양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다.산골에서는 빨리 내리는 어둠도 고즈넉해서 좋다. 산골의 밤 풍경에 스며드니 출렁대던 감성 또한 차분히 젖어든다.모든 것을 밀어놓고 무작정 떠나와 맞이하는 느긋한 밤이다.도심에서의 저녁은 재깍대며 돌아가는 초침소리에 눈을 맞추고 동동거리며 하루의 마무리에 급급했던 것이 일상이었다. 내 삶을 주어진 시간 안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들꽃에 한번 반하고 두 번 반한다.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식물이다. SNS에 올린 꽃 사진을 본 혹자는 '사진은 빛의 예술이야, 찬란한 햇빛 아래 존재하여 대상이 아름다워 보인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꽃의 다양한 빛깔과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내말에 수긍하리라. 식물을 손수 키우며 생태를 지켜본 사람은 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리라. 온몸의 감각을 뒤흔드는 가을의 들국화, 청화쑥부쟁이다.식물을 품에 안은 봄날이 떠오른다. 자연과 들꽃을 좋아하는 선배의 종합선물세트 선물이다. 유독 한 식물이 가는 줄기가 축 늘어
몇 해 전 충남도의회 한 의원이 충남교육청의 정책 방향 중의 하나인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비판하면서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왜 사용하느냐 하는 일이 있었다. 단순한 헤프닝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교육을 바라보는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무리 그 사회의 법과 질서가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수용하는 주체가 민주적 생활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셨던 외할머니께서 큰 걱정을 하시면서 일주일 만에 외갓집으로 가신 후 엄마의 크고 작은 일을 도왔다. 엄마의 설명을 듣고 가마솥에 밥을 하거나 연탄불에 미역국을 끓였다. 대문에 걸려있던 삼줄이 풀리는 세이레가 되자 엄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쌀 함지박을 주시며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라고 하셨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시루번을 때는 엄마를 보고 이제는 먹을 수 있겠다 싶었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인적이 드문 산길에는 키 큰 나무들과 잡목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복잡 난해하다. 숲속을 헤집고 길을 만들며 오르려니 얼마 가지 못하고 체력의 한계인 듯 숨이 찼다.풀숲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마치 순례길 인양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목을 축였다. 오늘만큼은 내가 선택한 도전이 결코 무모하지 않았음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반추하며 용기를 냈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산행에서 문득 오체투지를 떠올렸다.오체투지는 스스로 고통을 겪으며 온전히 부처님께 나를 맡긴다는 의미를 갖는 수행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