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곳에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40여년이 넘는 세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웃고 울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어느 집 아들이 공부를 잘해 서울로 출세했다거나 누구 집 아버지가 아파서 고생이 많다… 모두 이 골목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부대끼며 살았다. 이 골목, 대동시장이 조만간 사라진다. 무더위가 가시고 찬바람이 코끝을 맴돌 무렵 이곳을 찾았다. 흰색 나무간판에 투박하게 새겨진 ‘大洞市場 入口(대동시장 입구) 표지’를 지나 성인 한 명 간신히 지나가는 어두컴컴한 골목을 뚫고 들어가면 처음 반기는 집은 충북기름집.... [정재훈 기자]
한 때 이곳은 식당과 가게가 즐비한 곳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면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상인들은 이들을 쫓아 하나 둘 모여들었다. ‘뒷길’이었던 탓에 아기자기한 멋도 있었고, 골목 사이사이에 맛집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지금의 중앙로 79번길, 선화서로라 불리는 이곳은 옛 충남도청 뒷길이다. 뒷길 초입에 들어서자 슬레이트 지붕을 씌운 집들부터 슈퍼마켓이라고 불리기는 뭔가 아쉬운 ‘점방’까지 정겨운 옛 풍경이 펼쳐진다. 선화동에서만 40여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학선식당을 운영하는 고성곤 씨는 “충남도청이 떠나면서 많... [정재훈 기자]
이곳에 가면 그립고 또 낯익은 ‘냄새’가 난다. 사람과 흙, 생선, 모기향 등 비릿하면서도 투박한 냄새에 끌려 걷다 보면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서 있다. 강퍅한 도시생활에 마음이 지쳐있던 찰나, 시장 냄새를 통해 어려웠지만 푸근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대전의 관문인 대전역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인 ‘역전시장’은 아직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시장들이 초록 지붕에 덮이고, 매장도 성냥갑처럼 모두 똑같이 변해버렸으나 역전시장 뒷골목은 아직도 과거 풍경이 남아있다. 대전역지구대... [정재훈 기자]
여름의 초입, 사람들은 강으로 향한다. 후덥지근한 집을 벗어나 탁 트인 하늘과 물이 흐르는 천변에 앉아 있으면 온갖 근심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낸 오후 8시 무렵 대전 동구 목척교 인근에 인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초여름을 즐기고 있다. 대전천 강바람을 맞아가며 노인들은 장기와 바둑 삼매경에 빠졌고, 젊은 학생들은 음악 분수가 쏟아내는 물줄기에 시선을 빼앗긴 채 더위를 잊고 시간을 보낸다. 목척교 아래 벤치에 앉아 다리와 분수에서 쏟아지는 조명을 보고 있노라면 더위는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고, 아... [정재훈 기자]
부릉, 부릉, 오토바이 엔진이 말발굽 소리를 닮은 배기음을 뿜어내자 가슴이 설렌다. 학창시절 산울림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들으며 빗자루로 오토바이 타는 시늉을 하며 자라던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란 신성한 그 무엇과도 같은 존재다.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것 같은 광택 나는 바이크 한 대로 가로수가 끝없이 펼쳐진 국도를 누비는 상상을 하면 코끝에 바람이 휙휙 불기 시작한다. 대전 중구 문창동 오토바이거리는 빗자루를 타며 놀던 꼬마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오토바이거리 골목골목을 두건을 쓴 ... [정재훈 기자]
바야흐로 봄이다. 날이 풀리니 춘심(春心)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싱숭생숭한 기운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이럴 땐 심신에 안정을 주는 산책이 필요하다. 산책도 번잡스러운 도시를 걷는 것이 아닌 물과 나무, 꽃과 동물이 있는 곳으로 해야 들끓는 춘심을 다스릴 수 있다. 대동천 천변길이 춘심을 다스리고 봄의 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제격이겠다. 대동천은 식장산 기슭에서 출발해 판암과 신흥, 대동을 지나 삼성동과 중앙동 소제동을 거쳐 대전천으로 물줄기가 이어진다. 예전에는 시민들이 버린 하수로 악취가 심해 천변길은 ... [정재훈 기자]
성냥곽 같은 건물들, 회색을 띤 삭막한 원도심 일대에 색색의 온기를 전해주는 곳이 있다. 대전 중구 중촌동 무릉마을에 자리 잡은 ‘거리미술관’이 그렇다. 중촌 주공 2단지 아파트와 그 옆 철도를 끼고 있는 이곳은 ‘원도심스럽지 않은 형형색색’을 간직하고 있다. 먼저 멀리 옆 동네에서부터 눈에 잡히는 굴뚝을 따라 길을 잡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주공 2단지 아파트 단지 곁의 굴뚝은 으레 볼 수 있는 것과 다른 ‘작품’이다. 50m나 되는 이 굴뚝 전체는 수도배관으로 형상화 됐다. 윗부분에 거대한 수도꼭지를 달아놨고, 굴뚝 꼭대...
골목 초입에 들어서자 쌉싸래한 약재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대전 동구 정동에 위치한 한의약특화거리는 일본강점기부터 대전역 인근에 조성돼 10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 한때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전국 3대 한약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이곳은 현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예전엔 말도 못 하게 컸었지, 이곳 건재상도 30여년 전에는 직원을 20명 가까이 두면서 전국적으로 활동했는데 구도심이 되면서 부터는 장사가 안돼. 이제 부부만 남았어.” 한의약특화거리 터줏대감인 성재수 성수당건재상 대표(70)는 서...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대전에는 으능정이가 있다.” 대전의 성장과 그 역사를 함께하는 지역 전통의 상권, 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새로움과 빛을 간직한 젊음의 거리. 대전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이하 으능정이)’는 옛 충남도청과 대전역 사이, 중앙로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으능정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천년을 산 은행나무가 버티고 선 곳’이라 해 으능정으로 불렸단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충남도청과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유동인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인근에 홍명상가 등이 들어선 뒤 1980년대부터는 ...
나무 사이로 야트막한 언덕을 걷고 있노라면 이곳이 도심인지 잠시 잊을 정도다. 중구 대흥동 수도산에 있는 테미공원은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아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한겨울 높지 않은 경사로에 눈이 내리면 그 옛날 구릉에서 동무들과 함께 타던 눈썰매장으로 변해 아이들로 북적인다. 아이들은 맹추위도 잊은 채 미끄러지는 썰매에 홀려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 겨울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동갑내기 동네 친구인 김현승(11·대흥초 4학년) 군과 한재윤(11·성모초 4학년) 군은 겨울이 되면 테미공원이...
대전 시내에 이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또 있을까. 대전 원도심 중심부를 지척에 둔 중구 목동 언덕 꼭대기. 큰 건물이 없었을 과거에는 언덕 아래 저 멀리까지 굽어봤을 ‘거룩한 말씀의 회 수녀원’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룡역 인근 길에서 불과 150여m, 분명 온갖 차들의 소음이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붉은색 타일을 따라 길을 오르면, 발을 들이는 모두에게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을 안겨주는 곳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새하얀 하느님의 전당, ‘거룩한 말씀의 수녀...
재래시장의 매력은 정(情)이다. 파는 물건에 덤을 얹어주거나, 값을 덜어내는 '사람의 정'을 재래시장이 아니라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조금만 더 담아주세요"라는 애교에 여지없이 물건이 불어나는 일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찾을 수 없는 마술(?)이다. "남는 게 없어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끝내 더 담아주는 정은 오랜 시절 대전역 앞을 지켜온 중앙시장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중앙시장은 한 세기 전인 1905년 경부선 철도, 대전역이 개통되면서 처음 움텄다. 역에서 원동과 인동 방향으로 길이 뚫리면서 길 양쪽에 시장이 세...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구경거리가 더 있을까? 가을 초입인 지난 9월, 보문산 북동쪽 끝자락에 있는 부사동 부용로 일대에는 알록달록한 고양이 캐릭터 상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사동 청란여중·고 부근에서 보문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곳곳에 20여마리의 고양이 캐릭터들이 자리잡았다. 고양이들이 위치한 곳은 부사동 주민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때로는 담장 위, 어떤 경우는 벤치 위, 동네 곳곳의 층계 위에는 갖가지 모습과 색을 품은 고양이들이 사람들에 인사를 건넨다. 마을 가장 높은 고지, ‘칠석대 계단’ 정중앙에...
서서히 잊혀져 가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대전 전통의 재래시장 골목이 있다. 대전 동구 신인동주민센터 맞은편, 대전역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인동시장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인근의 중앙시장과는 달리 자그마한 곳이다. 하지만 왜소한 몸짓과 달리 대전의 역사에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기억도 할 수 없는 오랜 옛날부터 인동장터란 이름에서 시작해 명맥을 이어오는 곳으로, 기록상에는 대전지역 최초의 5일장으로 남아있다. 최근 시장 말미에 큰 공용주차장이 들어서는 등 일부 현대화되는 모습이지만, 30~40년은 족히 된 ...
동구 대동 산 1번지는 미로와 같은 곳이다. 대전 자양동 성당과 대동종합복지센터 인근에 폭넓게 자리잡은 이곳은 높다란 고지대 안에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다. 마치 나뭇가지와 같은 모습. 요즘 만들어진 길처럼 깨끗하거나 넓지는 않지만 정겨움이 와닿는 공간이다. 골목이 조성된 1950년대 이후 이곳을 거친 수많은 사람들의 손 때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형형색색의 색깔을 자랑하는 집들, 평상에서 한가로이 잡담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은 평범하지만 또 정겨운 우리네 모습이다. 대동 일대는 예술적인 면...
진한 사람 내음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골목이 있다. ‘이웃사촌’이 옛 말이 된지 오래이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요즘 세상과 격을 다른 곳이다. 바로 대전 중구 문화2동 ‘천근마을 골목’이다. 천근마을은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천근로 27번길’을 따라 내려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저 보통의 골목길, 새로울 것 없는 생활공간으로 여길 수 있지만, 정작 이곳을 찾게 되는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벽화에 금새 눈길을 뺏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천근로 60번길 일대 약 200m 구간에 펼쳐진 그림들은 행인들에게 눈요...
“XX야 노올자아~!” 마치 나른한 오후 어느 심심한 꼬마가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대전 동구 소제동 솔랑시울길 일대는 대도시, 특히 21세기에는 더욱 느끼기 어려운 가슴 저릿한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장소다. 이곳은 까치발을 들면 초록색·파란색 대문 너머로 이웃 세간살이가 훤히 보이고,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리는 곳이다. 아주머니들이 평상 위에서, 혹은 느릿하게 걸으며 수다를 떠는 공간이다. 다소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를 걷다 보면 80년대 생은 코흘리개가 동네 뛰어다니던 시절이 떠올려진다. ...
골목길은 과거의 상처가 드러난 곳이기도 하다. 이 상처는 높다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찬 삶의 터전 사이에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듯 비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중구 중촌동 선병원 앞 옛 대전형무소 골목이 바로 그렇다. 불과 200m도 채 안 되는 골목이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펼쳐진 근현대사의 모든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병원 앞에서 정면을 보면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와 자유회관 사이 이질적인 건축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곳저곳 바스러져 버릴 듯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선 수직건축물은 다름 아닌 ‘망루’다....
“이 책이 XXX의 앞날에 양식이 되기를…. 항상 널 생각하는 XX가 19XX년 X월.” 군데군데 해진 겉장을 넘기자 본래 책을 가졌던 이들의 사연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어떤 책에는 연인을 향한 사랑의 시가, 또 다른 책에는 받는 이의 성공을 비는 격려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는 대학생이었고, 누군가는 앳된 문학소녀였으리라. 한 장, 한 장, 켜켜이 묻은 손 때는 더러움이 아닌 추억이다. 새 책이 대체할 수 없는 헌 책만의 매력이다. 대전 동구 원동의 중앙시장 한쪽, 한복거리 입구 즈음에 위치한 ‘헌책방 골목’에는 ...
이번 주말에는 대전 중구 원도심 상권의 시작점, 여행의 출발점인 산호다방 네거리를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산호다방 네거리는 대전 중구청과 접한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 끝머리에 위치해 있다. 불과 10m 남짓의 골목길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좁은 교차로지만, 일반적인 골목과는 다른 깊이를 지닌 곳이다. 이곳은 과거와 맞닿은 아날로그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문화예술의 거리 내 다른 공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중심점인 산호다방은 인근 원도심의 시작이라고 할 만하다. 원도심이 대전의 중심이던 시기와 둔산 신도시 개발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