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이 역동적이다. 산야의 뭇 생명체들이 활개를 치며 겨우내 잠자던 초목들도 연녹색의 새순과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인간들도 덩달아 봄을 즐기며 노래한다. 어찌보면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행위의 산물이요, 자연과 동화하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4월의 초순에 어르신들과 7명이 진천의 보탑사와 농다리 인근으로 봄 마중을 간 적이 있다. 봄빛의 화사함과 적당한 날씨로 마음은 마냥 아이들의 모습이다. 보탑사는 야생화를 주제로 가꾸며 불자들과 소통하는 외에 보물 404호인 백비각과 연곡사지와 관련된 3층 석탑이 있는 절이다. 경내 주변을
베란다 작은 정원에서 바이올렛 꽃망울들이 햇살을 받고 송이송이 터지고 있다. 에메랄드빛에 가까운 퍼플색 꽃을 피워내는 바이올렛 토분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무는 것이 새 아침의 일상이 됐다. 바이올렛 꽃은 일 년 내내 피고 지는 걸 반복한다. 겨우내 정원의 휴면하는 식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꽃을 피우며 스산한 기운을 따뜻하게 품어주더니 봄빛을 흠뻑 받은 요즘 더 영롱하고 진한 꽃빛으로 안주인의 관심과 시선을 휘어잡는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세태의 유행이나 기류의 흐름에 휩쓸려 정신을 놓아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열정이 모자
공산무인 수류화개라더니 인간의 관심 없이도 계절은 바뀌고 봄꽃은 스스로 피어난다. 서로 더 잘났다며 표를 달라고 굽신거리던 정치인들은 당락이 확정되는 순간 얼굴을 바꿀 터이지만 흐르는 물과 피어나는 꽃들은 한 번도 우리를 속이거나 실망시킨 적이 없다.마침 선거 다음 날이 삼짇날이어서 속세의 소음과 다툼을 벗어날 겸 가까운 이들과 화류회를 열었다. 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에는 진달래 피어난 화창한 봄날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기생을 말에 태워 답청을 나서는 선비들의 풍류가 담겨 있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예전 같은 나들이는 언감생심이다
3월의 날씨가 변덕이다. 엊그제 종일 비가 얌전히 내리더니 비 그친 오늘 오후는 완연한 봄날이다. 추운가 싶더니 봄 햇볕과 바람, 꽃이 봄의 계절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꽃 마중의 날이 온 것이다. 봄이 꼭 ‘복 받고, 상탄 느낌’이다. 봄은 이렇게 우리들의 춘심을 일깨운다.봄비에 나무 끝 새순이 연녹색으로 비쳐 보인다. 생명의 조화와 계절의 순응이 합주하는 봄이다. 동네의 들길을 걸으며 수목과 풀의 높이와 크기, 모양이 서로 다른 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봄맞이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긴 겨울 회색빛 색감을 뒤
낯선 사람의 등장에 아이들 눈망울이 더 초롱초롱하다. 무심한 척 시선을 아래로 떨구지만 흘낏흘낏 쳐다보는 얼굴빛에서 호기심과 경계심이 역력해 보인다. 올해 초등학교 저학년들과 몇 시간씩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개학을 앞두고 어린 새싹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실로 들어선 첫날,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세월의 굴레가 아주 굵게 선을 긋고 있음이 감지됐다. 세상의 웬만한 시끄러운 소리가 나를 향해 쏟아져도 무던해질 수 있는 평정심과 구변으로 맞서오던 나였는데 천진한 아이들 앞에서만
지난해 입동을 조금 지난 무렵 금강 유역 음식문화 조사차 양산팔경 지역에 갔을 때의 일이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으므로 넓은잎나무 단풍의 절정기는 지나버렸지만 비단강이 빗겨 흐르는 강선대 절벽 위 소나무잎은 더욱 푸르게 느껴졌다.함벽정 가는 길 뒷골마을 쪽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한 농가에 대여섯 사람이 모여 김장이 한창이었다. 평상 위에는 물기를 빼느라 절인 배추가 쌓여있고 허리 굽은 노모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채 썬 무와 갓에 찹쌀풀 등이 담긴 빨간 플라스틱 통에 젓갈을 조금씩 넣어가며 김칫소 만들기에 여념이
동네 골목길을 적시는 2월의 봄비가 내린다. 봄의 날씨가 찬 기온으로 늦겨울을 넘나든다. 비와 진눈개비로 변화하는 날씨는 봄이 온다는 계절의 순환이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며 내리는 봄비는 자연과 사람에게 수많은 사연과 인연을 만들 것이다.동네를 가르는 골목길의 수목에서 가녀린 듯 맺힌 빗방울을 보았다. 봄의 길목에서 보는 방울진 눈요기였다. 떨어질 듯 반원의 매달림이 우리의 삶 같이 보였다. 길가의 노란 잔디 속에서 자세히 보면 파란 싹이 촉수를 뻗었다. 우리가 느끼는 봄추위보다 먼저 새싹과 푸릇함이 보인다. 오늘이 정월 대보름을
천방지축 하룻강아지다. 애교인지 앙탈인지 꼬리를 살랑대며 거실을 비호같이 몇 바퀴 내달리는 것으로 아침이 왔음을 알린다. 말 수 없던 노부부의 고요하던 아침이 첫새벽부터 수선스러워지고 웃음소리가 나는 건 순전히 이 작은 애물단지가 등장한 날부터이다.작년 여름, 십 수 연간을 한 울타리에서 살던 애완견 한 마리를 무지개다리로 건네 보내며 이별이 너무 쓰린 상처가 되어 다시는 생명 있는 것들을 품지 않으리라 했다. 그런데 그 녀석을 꼭 닮은 애물단지가 또 들어왔다. 조막 둥이 만한 이 악동은 나를 지에미로 아는지 눈만 뜨면 하루 종일
동춘당 종가의 음식을 찾아 대전역에 내리는 순간 아련한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열차가 달리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1970년대 어느 여름의 일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방학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삼촌집에 가게 되었다. 삼촌은 서울에 올라가 집도 사고, 자가용도 있고 그리하여 이제는 성공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분이다.꼭 직접 찾아가야 할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기억에 없지만 당시는 특별한 볼 일 없이도 삼촌은 물론 문중 일가들까지 서로 찾아가고 신세 지던 일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정월의 어느 날 타 지방의 작은 시골 책방을 찾았다.반시간의 여행길에 나는 들떠 있었다. 새로움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책지기의 안목과 어떠한 주제로 나를 맞을지 궁금하다. 코드가 맞는 분들과 대화는 신선한 소통의 마음 열림이기 때문이다.지난 년도를 거슬러 문학적 계획과 실행 안에서 나는 과연 어떠한 감성으로 맞았는지 생각을 반복하였다. 그 중 글공부 수강생이 매번 편지지에 손 글씨로 수필을 쓰는 분이 있었다. 글도 좋았으며 생각의 정리가 틀리지도 않고 써내려간 문장 또한 일품이었다. 컴퓨터 타자가 아닌 손으로 써내려간 글씨가 정성
비가 온다. 낮부터 내리던 비는 밤이 이슥도록 그칠 줄 모르고 자박자박 겨울밤을 적시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지만 찬 계절답지 않게 순한 빗줄기는 이슥토록 창문을 두들긴다. 절기로 대한이 지났고 입춘이 머지않았으니 오늘 밤 내리는 비는 봄을 마중하는 상서로운 비라 해야 하나.겨울날에는 그날의 기온과 날씨 변화에 따라 마음도 흔들린다. 하얀 눈이 흩날릴 때면 공연스레 설렘이 인다. 기약 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버린 파릇하던 청춘의 날들이 선물처럼 불쑥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아니한 막연한 회상에 젖어 보기도 한다. 하
모처럼 만난 지인과 냉면을 먹기로 했다.추운 겨울에 웬 냉면이냐고 할지 모르나 냉면이 원래 추운 지방에서 한겨울 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데서 시작된 음식이니 동지 섣달에 먹는 냉면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냉면 매니아를 자처하는 우리는 가늘고 쫄깃한 면발에 달콤새큼한 육수가 어우러지는 시중의 일반적인 냉면보다는 메밀로 뽑아 투박한 면발을 깔끔한 육수에 만 슴슴한 맛의 이북식 냉면을 좋아한다. 메밀의 향과 식감 그리고 담박한 육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마침 청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통 평양냉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