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경 진
K-water연구원장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은 공직관련자가 직무관련대가성 없이도 금품을 수수하거나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한 법률로, 금년 9월 28일 발효를 앞두고 있다. 기존 법률로는 직무관련성을 전제로 한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 가능하였기 때문에 부당한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제재가 불가능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직관련자로 하여금 청렴결백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스포츠 분야에서 팬이 격분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젊은 선수들이 금품을 받고 경기를 고의로 불리하게 이끌어나간 행위로 인하여 처벌받고, 더 나아가서는 업계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스포츠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금번 사건은 수사에 따라 다수의 관계자가 연루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이다.

얼핏볼 때 큰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 두 가지 이슈를 하나로 연결하는 키워드는 바로 ‘신뢰’다. 전자는 공직관련자의 청렴을 강조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부 및 공공기관의 대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한편 후자는 선수들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나타나는 연출없는 감동을 얻기 위해 스포츠를 지켜보는 팬들의 신뢰를 저버린 기만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신뢰라는 말은 ‘믿고(信) 의지한다(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인정하고, 그 사람의 언동에 대해 거짓과 속임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갈수록 세분화되고 복잡성이 증가되고 있는 오늘날,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개인의 정보는 더욱더 불확실해지는 이른바 ‘비대칭정보’의 상황이 강해지고 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개별 주체들이 타인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를 명확한 정보로 인정하고 이를 믿을 때까지 어떤 일도 진척되기 힘들다. 고객이 기업을 믿지 못하면 제품의 구매가 감소하여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정책을 펼쳐나가기 힘들다. 현대 사회가 '신뢰사회'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의 연속인 현대 사회에서 신뢰가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발생하는 정보의 결핍을 보완하고 예측가능성을 더하는 역할을 하여, 일상이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만든다는 점을 콕 집어 이야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대 사회학자인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은 다양한 사회를 비교·분석하고 고찰한 결과를 통해 ‘신뢰는 사회가 긍정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대내적 측면에서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며, 국제 세계에서는 대외신인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신뢰는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은 대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굳게 만들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펼쳐나가고 이에 대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은 본인의 원활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거짓과 속임없이 행동하여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할 것이다.

경제학 외적으로도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모형을 보면, 개별 주체는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주체가 살아가는 사회는 수없이 다양하고 많은 상황이 연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행위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위 모형을 연구한 경제학자들 또한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놓았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이득을 취하기보다 장기적이고 더 큰 이익을 누리기 위해 모든 이들이 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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