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섭 대전충남중소기업청장
[시선]

최근 새로운 보호무역주의의 광풍이 거세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 한국 수입규제 건수가 20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2배에 달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도국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고용절벽, 구조조정 등 대내적 요인까지 겹쳐 우리경제에 시름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의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스타트업(벤처기업)중심의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스타트업 생태계에 2%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창업 실패를 용인하기 어려운 사회적 인프라와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수개월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내 아들의 창업은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창업에 도전한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의 창업에 대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53%가 자녀의 창업을 반대하고, 71%가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의 창업 실패는 신용불량 처지까지 몰리게 되고, 이런 실패에 대한 낙인효과를 극복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는 소비자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실패한 신제품을 전시하는 ‘실패박물관’으로 불리는 명소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예약이 필수고 거액의 관람료에도 기업 경영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의 흑역사를 보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지혜와 성공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로 삼는다 한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실패를 혁신을 위한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창업 실패 경험을 창업의 중요한 요소 중 두 번째로 꼽을 정도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아이비리그의 실패에 대한 졸업 축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실패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이런 분위기는 창업투자와 회수시장이 활성화되어 창업자 개인의 리스크가 낮고 재도전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확립돼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실패 후 재창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재창업자금지원, 재도전성공패키지 제공, 성실 실패에 대한 기준마련 등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과 제3자 연대보증 폐지, 신용정보 공유제한 등 실패 낙인효과와 재도전의 걸림돌을 제거해나가고 있으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미국에서는 4%의 벤처기업이 전체 일자리의 60%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5년간 벤처기업의 고용증가율은 8%로 대기업이나 일반 중소기업보다 일자리 창출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생 벤처기업이 경제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낮게 실패하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무엘베케트의 말처럼 실패를 용인하고 더 나은 창조적 실패를 유도하는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실제로 재도전 기업의 5년차 생존율이 일반 창업기업 생존율의 2배 이상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로 창업 실패 경험은 실수를 보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의 재탄생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재도전 기업에 대한 엔젤투자, 크라우드 펀딩 등 창업자금 조달 시스템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양질의 투자금 회수처인 M&A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더 나아가 창업과 재도전의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돼 스타트업 중심의 역동적이고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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