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혁 농협대전공판장 사장
[경제인칼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농산물을 고르는 기준에 맞는 표현이다. 소비자는 대부분 반듯하고 착색이 잘된 예쁜 농산물을 선호한다.

예전에 농산물 구매를 담당하던 시절 유럽·호주연수를 간 적이 있는데, 농산물 시장을 벤치마킹 하면서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농산물들이 왜 이렇게 작고 못생기고 형편없는 것일까 실망과 의문을 가진적이 있다. 내가 우리나라의 농사기법을 배워 외국에 이민가서 농사지으면 최고시세를 받고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봤다.

2008년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TV에서 중국산 농약 ‘파클로부트라졸’이 밀수돼 수도권 일대 쌈 채소재배 농가에 살포되고 있는 현장을 밀착취재 해 방송에 나간적이 있다. 당시 나는 서울 양재동에 있는 농협유통에서 청과부장을 담당하고 있던터라 출하산지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해봤지만 ‘파클로부트라졸’은 우리에게는 들어보지도 본적도 없는 국내에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등록 농약이였다.

이 농약을 일반농약과 혼합해 쌈채소에 화장을 시키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적당한 크기의 색깔이 선명하고 오래두어도 상하지 않는 ‘미인 채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재배농가는 절대로 이 채소를 먹지 않는다. 농민은 이 농약을 치면 몇배나 시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안 할 사람이 있겠냐고 항변을 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이런 불행은 재배 농가만의 잘못은 아니다. 최종 소비자인 우리들이 스스로 예쁘고 깨끗한 농산물을 선택하기 때문에 만든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친환경 농산물인데도 벌레먹은 채소나 길이가 짧다든지 구부러진 채소는 무조건 반품되고 크기와 모양을 우선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농(下農)은 잡초농사를 짓고 중농(中農)은 곡식농사를 지으며 상농(上農)은 땅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있다. 하농은 게으르며 방치형이다. 중농은 비료·농약 등을 사용하여 단기적으로 수확량도 많고 농산물을 예쁘고 깨끗하게 만들어낸다. 그러나 진정한 농사꾼은 상농이며, 상농은 흙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농사를 짓는다.

중농은 비료와 농약을 믿고 농한기에 쉬지만, 상농은 겨울에도 땅을 살리기 위해 준비한다.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3년 이상 땅관리가 되어 토양검사를 받아야 한다. 비료와 농약을 계속 사용한 땅은 토양이 산성화돼 이땅에서 재배한 작물을 섭취하는 사람도 몸이 산성화돼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또한 토양을 단립화시켜 흙이 단단하게 굳어져 나중에는 식물이 뿌리를 뻗지 못하게 만들며, 화학비료의 유실은 강물이나 바다로 흘러들어 부영양화(富榮養化)와 적조 현상을 초래해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자연생태계를 파괴시킨다. 농약의 남용은 수분자인 곤충과 유효미생물을 멸살해 적자생존의 균형과 조화를 파괴한다.

요즘 우리사회도 곡식과 열매만을 생산하기 위한 제도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법과 정책이 너무 복잡하고 수시로 바뀐다. 법과 정책을 시행하는 담당자 조차도 혼란을 겪는 내용을 국민이 지키라고 강요한다. 정책수립자는 재임기간 동안 중농의 경우처럼 비료와 농약을 주어 단기적으로 보기좋고 예쁜 열매를 만들어 내려고만 하고, 상농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농사를 지어 생태계를 살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곧 시행예정인 김영란법이 과연 열매만을 얻기 위한 것인지 땅을 살려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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