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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여름, 나는 1번국도를 따라 서울에서 대전까지 홀로 걸어간 일이 있다. 이 무식한 걷기는 소설을 쓰며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결정한 일이었다. 무언가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내가 소설을 쓴다고 세상이 알아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무작정 고향인 대전까지 걷다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국도를 따라 걷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1번국도는 서울, 수원, 천안 등 큰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도시의 낮 풍경이 과연 낭만적이었겠는가? 도시의 여름은 잔인할 정도로 더웠다. 게다가 국도변은 결코 걷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국도변은 내가 힘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힘을 내게 그대로 반탄했다. 피로감을 더하는 길이었다.

나는 메마른 주변 풍경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주기적으로 도로변 가게에서 시원한 소주를 구입한 뒤 내용물을 물병에 옮겨 담았다. 미친놈처럼 한여름 낮에 길을 걸으며 소주를 병째로 까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순 없었으니 말이다. 뭐 하고 있는 짓은 이미 미친놈이었지만...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소주를 한 모금을 마셔주면 견딜 만 했다. 노가다를 뛰는 아재들이 괜히 소주를 까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이때 안주거리는 육포였다. 육포는 휴대하기 편하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뱃속으로 들어가면 불어서 끼니로 때우기에도 요긴했다. 맛도 짭짤하니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하기에도 육포는 좋은 안주였다. 옛 몽골기병들이 유럽을 침공할 때 왜 소 한 마리를 육포로 만들어 말에 식량으로 싣고 다녔는지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저마다 안주를 고르는 기준이 다를 테지만, 내가 안주를 고르는 조건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맛있어야 한다. 둘째, 배부르지 않아야 한다. 셋째, 간단히 차릴 수 있어야 한다. 육포는 이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안주 중 하나이다. 지금도 나는 동네 가게나 대형 마트에 가면 육포 코너를 뒤지는 일을 잊지 않는다.

육포의 발색과 보존을 위해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이 발암성분이고, 염분 함유량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먹을 안주는 하나도 없다. 튀기는 조리법이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때 되면 치킨을 먹어줘야 금단증상이 풀리는 게 우리네 일상 아닌가. 매 끼니마다 육포를 먹는 것도 아닐뿐더러, 매 끼니마다 육포를 먹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다. 육포는 비싸니까. 눈물이 나네... 역시 육포는 마트에서 '1+1' 행사를 할 때 대량으로 쟁여둬야 한다. 그래봤자 며칠 지나지 않아 맥주 안주로 모두 사라지겠지만.

육포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더 맛있게 먹으려면 참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육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육포에 참기름을 바른 뒤 약불에 타지 않게 살짝 구워내는 것이다. 이 방법이 귀찮다면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참기름을 바른 육포를 전자레인지에 30~40초 가량 데우는 것이다. 이마저도 귀찮다고? 그렇다면 그냥 작은 종지에 참기름을 덜어낸 뒤 육포를 찍어먹으면 된다. 나는 주로 이렇게 먹는다. 가끔 마요네즈에 청양고추와 간장을 섞어 만든 소스에 찍어먹는 수고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역시 육포에는 참기름을 바르는 게 최고이다.

요즘 대형마트에선 정말로 많은 종류의 육포가 판매되고 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어 만든 홍콩의 명물 '비첸향'을 비롯해 돼지육포, 닭육포, 말육포, 연어육포 등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고기로 만드는 육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다양한 육포를 보이는 대로 구입해 먹어봤지만, 역시 육포는 소고기로 만든 게 최고라는 게 결론이다. 돼지육포는 질감이 부드럽고, 닭육포는 담백한 맛이 돋보이지만, 씹을수록 베어나오는 고소한맛과 감칠맛은 소고기 육포를 따라갈 수 없다. 자동차 튜닝의 끝은 결국 순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육포는 역시 소고기로 만들어야 한다.

마트의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육포 중에서도 어린 시절에 맨 처음 접했던 '코*부' 육포가 가장 맛있는 것 같다. 개인적 취향이다. 종가집에서 한우 우둔살을 씨간장으로 절여 정성스럽게 만든 육포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 그냥 황교익 쌤이랑 맞짱 뜨시라. 내겐 그런 귀한 육포를 사 먹을 만한 큰 돈이 없다. 지금도 내게 육포는 마트에서 쉽게 집어들지 못하는 품목 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래서 육포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7월 24일에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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