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친구들 모임에서 '호스피스'라는 말이 들린다. 가까이 가서 내용을 들어보니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해 온 동기 한 명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서 친구 아내가 알아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 한 친구에게 부탁해 친구 아내로 하여금 내게 전화하도록 했다. 바로 걸려온 전화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의 비용, 간병 제도, 실제로 어떤 것을 해 주느냐는 등을 묻고는 본인은 하루라도 빨리 가서 거기 입원시키고 싶은 데 아직 환자인 친구가 꺼린다는 말과 함께 설득해서 빨리 가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친구는 바로 입원했다. 본인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나 아내의 설득에 마지못해 따랐던 것이다.

친구가 꺼렸던 것 같이 아직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죽으러 가는(?) 병동'일 수도 있다. 사실만을 말한다면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죽음이 멀지 않은 환자, 즉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연명을 위한 치료는 중지하고 편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삶의 질'이다. 치유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환자는 생명을 조금 연장하느냐, 아니면 치료를 받는 것 보다 살아 있는 동안에 한 인격체로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본인이 판단 해야 한다.

그 친구는 오래 있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있는 동안 효과적인 전문 간호를 받을 수 있었고, 간병하는 아내도 조금은 덜 힘들었고, 집으로 찾아가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친했던 친구들의 문병을 받기도 했다. 비록 손을 잡는 것도 힘들었지만 잡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짧은 격려의 말 속에 나누던 미소는 지금까지의 우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삶을 마감하는 날, 병동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임종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별도의 방이 있어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마지막 정을 나누며 예의를 표하도록 해 드렸다.

현대의학에서 강조되는 것이 '삶의 질'이다.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질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생의 마지막 나날의 삶의 질이다. 평생을 함께 한 가족 간의 사랑도 정리해야 하고 사회적 관계도 정리가 돼야 한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들이다. 대가족으로 살던 때는 내려오며 학습된 전통이 있어 장례 절차 진행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동네 전체가 한 가족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쌓여진 경험이 없다보니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의 역할 중 하나다.

삼우를 마치고 친구 아내와 외동인 딸이 찾아왔다. 병동에서 너무나 잘 해 줬고 장례식장까지 직접 와서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것까지 꼼꼼히 챙겨줘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서 오셨다고 했다. 이런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핵심이 아닐까?

사회에는 여러 조직이 있다. 의료원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은 찾는 이들로 하여금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까지 하는 것이 맡겨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 맡겨진 임무들을 다 함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또 받는 일이 이 사회 모든 조직에 많이 쌓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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