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결혼 후 시댁어른들에게 큰절을 하는 행위가 폐백(幣帛)이다. 이 때 시부모가 신부에게 던져주는 과일이 있다. 대추와 밤이다. 왜 하필 대추와 밤일까. 폐백 풍습은 아주 먼 옛날 중국 유가(儒家)에서 비롯돼 우리나라로 전래됐다고 한다. 중국에는 '자오리쯔(早立子)'와 '자오셩귀이쯔(早生貴子)'란 말이 있다. '결혼한 부부들이 하루빨리 자식 많이 낳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결혼했으니 빨리 부자가 되어라’라는 ‘자오리쯔(早利子)’도 있다. 이는 시부모가 신부에게 주는 덕담인데 언제부턴가 어떤 물건을 던져주는 행위로 변했다. 그 물건이 바로 대추와 밤이다.

글자 형태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들이 많은 중국어의 특징에서 비롯됐다. 중국인들은 이런 특징을 실생활에 심심찮게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뜻과 전혀 관계없이 발음이 같은 단어를 사용해 특정의 의미를 표현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배의 리(梨)는 이혼하다의 리(離)와 발음이 같다. 중국 부부는 지금도 절대로 '배'를 두 쪽으로 갈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자칫 이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추와 밤도 마찬가지다. 대추는 한자어로 '조(棗)'이고, 밤은 '율자(栗子)'로 합하면 조율자(棗栗子)다. 중국어로 '자오리쯔'다. 그러니까 '일찍 조(早)'와 '대추 조(棗)'가 '자오'로 발음되고, '설 립(立)’과 ‘밤 율(栗)' 그리고 '이로울 리(利)'가 모두 '리'로 읽힌다. 여기서 중국인(儒家)들은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과일, '밤과 대추'를 신부에게 던져주며 다산부귀를 원했던 것이다.

다른 설도 있다. '다른 과일보다 열매가 많이 열리는 데다 씨가 하나인 특성을 가진 대추처럼 많은 자식을 낳으라'라는 바람에서 대추를 던져주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 폐백은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한다. 단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중국 풍습이 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마치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저 형식에 그치고 있다. 대추와 밤을 듬뿍 받아도 산아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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