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규 대전본사 경제부

“환급 재원이 조기에 소진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신청 홈페이지에는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이게 정부 정책이 맞긴 한가요?”

최근 가전제품을 구매하고 환급을 받으려는 한 소비자는 29일 개설된 ‘고효율 가전제품 인센티브’ 지원사업 홈페이지에 수십차례 접속을 시도했지만 접속이 되지 않아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오전 환급 신청 홈페이지에 약 6만여명의 접속자가 폭주하자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7~9월 구매한 1등급 가전제품 중 에어컨과 일반·김치냉장고, 40인치(101.6㎝이하) TV, 공기청정기에 한해 금액의 10%를 개인별 20만원 한도 내에서 환급해주는 일시적인 사업이다.

‘환급’이라는 말 때문에 소비자에게 무조건 이익이 될 것처럼 비춰지지만 정작 신이 난 건 가전업계다. 가전업계는 급조된 이번 사업을 마치 할인행사인 것처럼 안내하며 관련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가전업계는 재원이 소진되고나면 이후 고객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은 안내하지 않은 채 제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인터넷을 통해서만 인센티브를 신청해야한다는 점도 다양한 소비층을 배려하지 않은 졸속한 환급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PC 사용에 익숙한 젊은층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가전제품의 시리얼 넘버가 어디있는지, 사진 파일 업로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중·장년층 이상 노년층들에게는 신청 자체가 또다른 숙제나 다름없다. 이러한 이유로 가전업계가 ‘환급’이라는 달콤한 꼼수만 내세워 제품을 판매할 경우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에 어두운 일부 계층에게는 말 그대로 환급정책이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환급 개시부터 다양한 형태의 혼란이 발생하며 환급정책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음에도 정부는 아직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환급 재원 규모나 접속 폭주 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면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고 환급 계획을 세우면서 구매 대상과 환급 규모를 계산하지 않았다면 탁상 행정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해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환급 실무를 맡은 한국에너지공단 인센티브 추진단 관계자는 뼈 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계획 발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일방적으로 하고 뒷처리는 우리(한국에너지공단)에게 하라니, 똥 싼놈 따로 치우는 놈 따로 아닙니까. 사전 논의도 없이 사업 추진을 맡게 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닥칠 소비자들의 원성을 짐작하고 있는 관계자의 말이 애처롭게 들릴 정도다.

단순히 환급만 해주면 경기가 살아나고 국민들의 호응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정부의 무사안일한 태도는 또한번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또한 각 부처 간 상호 논의나 협의가 아닌 상명하복식 불통 문화는 정책의 오류를 만들어낼 뿐이고 이는 곧 국민의 피해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정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