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한남대 교수

겸연쩍은 고백이지만 필자는 머리가 좀 큰 편이어서 특히 모자를 쓸 때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생활에서는 조금 춥거나 더워도 모자를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학생 시절이나 군복무 기간 중에는 나름대로 크고 작은 난관이 이어져 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는 맞는 교모가 없어 교복 가게 주인이 줄자로 머리를 잰 뒤 맞춤모자를 만들어 줬다. 고등학교 때는 다행히 조금 빠듯해도 그럭저럭 치수가 맞는 것을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 군에 입대해 훈련기간 중 부친의 별세로 휴가를 나와야 했다. 아직 사관후보생 교육 중이라 정모를 지급받지 못한 때여서 이리저리 큰 모자를 구하느라 부사관들이며 훈육관이 애를 많이 썼다. 진해 시내를 온통 뒤져 위관급 정모 하나를 구해 왔는데 역시 크기가 많지 않아 시시각각 머리를 조여오는 압박감이 만만치 않았다. 아버님 별세의 슬픔에 모자의 고통까지 겹쳐 왔다.

이렇듯 장황하게 개인적 경험을 개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발전이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가령 옷이나 구두, 모자 사이즈 같은 생활에 밀접한 부분에서 사이즈 선택의 다양성 부족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치수가 아주 크다면 그 나름대로 전문 매장이 간혹 있지만 평균 치수를 약간 웃돌거나 밑도는 경우는 어려움이 가중된다. 필자의 제자 한 명은 남자임에도 발 크기가 240㎜ 정도여서 남성용 구두로는 선택의 기회가 거의 없어 여성이나 아동용 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기형적으로 작은 사이즈도 아니고 단지 일반인들의 통상 규격 아래위로 조금의 편차가 있을 따름인데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다양한 상품들은 놀랍게도 거기에 더없이 인색하다. 대다수에게 맞는 보편적 크기의 제품을 위주로 하면서 조금 큰 것, 약간 작은 것도 함께 만들면 될 터인데 아쉽게도 이런 측면에는 야박하다.

어디 그뿐인가. 대부분의 제품이 오른손 사용자 위주여서 왼손을 쓰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어느 중진 시인이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썼다가 빗발치는 반론에 시달렸던 것도 얼마 전이다. 자동차의 경우 핸들 오른쪽에 있는 기어는 왼손 사용자에게는 불편하다. 운전석을 조금 오른쪽으로 옮기고, 출입에 불편이 없는 구조로 핸들 왼쪽에 기어를 장착할 수도 있을 터인데, 장애우용 특수장치 부착 차량이며 쌍둥이용 유모차도 생산되는 현실에서 그 실현성은 아직 요원하다.

이른바 '삶의 질' 향상이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음에도 모자, 구두, 의복, 가전제품 같은 생활측면에서의 다양성 확보와 배려에는 관심이 비껴간다. 물론 제작사에서도 이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수 설비며 생산 라인에 별도 투자가 필요한 만큼 채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활용품에서는 간단한 크기 조절로 가능한 일이고 보면 중요한 것은 다수의 대중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적잖음을 배려하는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과거 신체 크기와는 관계없이 지급되는 군수품에 몸을 맞춰야 했던 군대생활도 이제는 크게 향상돼 개인의 형편을 고려할 만큼 현대화된 이즈음 보편적 규격에서 약간의 편차를 보이는 소수자 마이너리티를 위한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은 구두나 모자, 의복 사이즈의 풍부한 선택 가능성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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