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석 충북본사 사회교육부장
[데스크칼럼]

‘현대판 축사 노예’

역사책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19년 동안 축사에서 소똥을 치우는 등의 허드렛일을 한 47살 고모 씨.

고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역사 속 노비 또는 조선시대 머슴은 한 해 동안 일 한 대가로 1년치 임금인 ‘새경’이라도 받았다. 축사 주인은 고 씨를 머슴처럼 부리면서도 임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밥을 굶기고, 학대를 한 의혹까지 제기됐다. 청주시 오창읍 한 축산 농가에서 벌어진 ‘현대판 축사 노예’ 사건의 전말이다. 사회적 약자인 지적장애인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고 씨가 청주시 오창읍의 한 축산 농가에 온 것은 1997년 여름. 고 씨는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다 행방불명된 뒤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 오창읍 김모(68) 씨의 농장에서 소 40~100마리를 관리하는 강제노역을 해왔다. 지적장애인 고 씨에게는 이름도 없었다. 그냥 주민들이 ‘만득이’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는 축사 분뇨 냄새가 진동하는 축사 옆 쪽방에서 지내며 험한 노역에 시달렸다. 하지만 임금 한 푼 받지 못했고 끼니나 제때 챙겨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도 주위로부터 도움의 손길은 전혀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19년을 노예처럼 살았다. 원래 고 씨는 자신이 일하던 축사와 불과 10여㎞ 떨어진 흥덕구 오송읍에서 살았다. 주변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의 노예생활은 그렇게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시스템 재정비를 부르짖는다. 불과 1년여 전인 2014년에는 악덕 염전 사업자들이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유인·감금·폭행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염전노예’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당시에도 장애인 복지시스템 재정비가 핫 이슈였다. 하지만 이번 ‘청주 오창 축사 노예 사건’을 보며 우리나라 복지시스템과 주민들의 이기적인 무관심은 변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착취 사건이 터질 때면 가해자에 대한 질책만 늘어놓는 데 그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관심도 시간이 지나면 이내 식어 버리고 잊고 지낸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자치단체는 장애인 인권유린 방지대책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혹시 장애인 가정이나, 시설, 장애인 고용 기업 등에서 차별이나 폭행 등의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학대한 파렴치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선행돼야 한다.

‘축사 노예 만득이'에 대한 학대 의혹 등의 사실 규명은 경찰의 몫이다. 아직도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 절반 이상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실제로 피해자가 63명에 달한 염전노예 사건의 경우 가해자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대판 노예 만득이 사건’은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 충북도의회가 ‘제2의 만득이’ 발생을 막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꾸려 장애인 복지제도 전반을 점검한다. 경찰도 ‘축사 노예 만득이’에 대한 학대 의혹 등의 사실 규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만득이가 19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고난의 세월을 살아 온 만득이에게 우리사회가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만득이 사건'이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유린의 마지막 사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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