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철 청주시 서원구 세무과 시세팀장
[시선]

지난 봄의 일이었다. 근무시간인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갑자기 민원대에서 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어느 노인의 거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그렇게 크게 노여워 하시는지 알아보기 위해 민원대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담당자에게 듣기 거북할 정도의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조용하던 사무실 안이 갑자기 어수선해지며 사무실 직원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우선 노여워하시는 노인을 진정시킨 다음,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알아봤다. 법원에 소송과 관련해 제출할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서울에서 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서원구청에 도착해 민원서류를 요청했는데 발급이 안 된다고 해 노여움을 표출한 것이다. 과세증명서는 신청자가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신청할 경우에는 납세의무자의 신분증과 위임장을 제출해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이다. 그런데 그 노인은 과세물건의 납세의무자가 아닌 제3자로서 과세물건 종중의 대표자인 것이었다. 종중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발급받을 권리가 있고, 또한 지난 달에 타 지역에서 발급받은 증명서를 제시하며 "그곳에서는 발급해 줬는데 여기서는 왜 안되느냐"며 듣기 민망할 정도의 심한 욕설과 공무원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욕설하시지 말고 말씀 좀 가려서 하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을 하시며 "발급을 안 해주면 구청장에게 올라가서 항의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노인을 이해시키고 진정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노인을 제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노인이 구청사를 벗어난 이후 사무실은 다시 평온을 찾고 평상 시의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연세가 족히 80세는 되어 보이는 노인으로서는 대단한 소란이었다. 민원부서에 근무하다 보면 민원발생이 빈번히 발생하게 되는데 그날은 다른 날과 좀 다르게 아침부터 발생한 민원이라 그런지 하루종일 개운치가 않을 것 같아 하루의 출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 2시간 정도 흘렀을 즈음, 전화 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받고보니 아침일찍 소란을 피우고 떠난 그 노인이었다. 또 다시 항의를 하려고 전화를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생각으로 그 노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침에 거친 항의를 하던 노인의 성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침에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전화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달에 발급받았던 과세관청에 찾아가 여기는 발급해 줬는데 서원구청에서는 과세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유를 알아봤던 것이다. 그쪽에서는 납세자가 사망해 종중의 대표자에게 발급해 주었으나 서원구청에서는 신청자가 타인으로 위임장과 납세자의 신분증이 없이는 발급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는 그제서야 자신의 무리한 요구가 잘못이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사과전화를 한 것이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할 줄 아는 멋진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실수는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못한다면 그보다 우매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순간 오늘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한 시원한 감이 들어서 기분도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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