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사실 알리려 서류 빼내
검찰-변호인 ‘공익성’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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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회사 대표의 횡령사실를 알리려고 서류를 몰래 빼내간 직원들에게 과연 절도죄를 물을 수 있을까?” 4일 대전지방법원 230호 법정에서는 제12형사부 주재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재판에는 시민 중 무작위로 선발된 배심원 8명이 참여해 검찰과 변호인 측의 날선 공방을 지켜봤다.

이날 사건의 쟁점은 지난해 3월 15~16일 버스회사 서고에 보관 중인 탁송료 관련 회계서류를 2회에 걸쳐 빼낸 회사 전 상무이사 조모(42) 씨와 전 직원 이모(36) 씨에 대해 절도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단순히 서류를 몰래 가져간 사실만 본다면 절도죄로 볼 수 있지만, 이 사건 피고인들은 회사 대표의 탁송료 횡령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절도죄의 경우 ‘불법영득의사’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변호인 측은 서류를 가져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음을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이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회사 주식을 보유한 주주임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들과 가족명의 주식을 합하면 조 씨는 7.5%, 이 씨는 1.4% 정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며 “형법 제20조에 보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은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회사 주주로서 대표의 비위사실을 알리려는 피고인들에게 절도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 측은 이 사건 피고인들을 절도와 공갈미수,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한 버스회사 대표 진술과 수사자료, 증인으로 출석한 회사 직원 진술을 토대로 피고인들이 횡령 사실을 알고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서류를 가지고 나온 것이라는 정황증거를 내세웠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먼저 금전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 났지만 회사 대표 등의 진술에서 2억~5억원 등의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정황이 확인된 만큼 공익적 목적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주주로서 회사 측에 회계서류 열람 등 적법한 절차로 충분히 대표의 비위혐의를 입증하거나, 경찰의 압수수색 등의 절차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보통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증거자료는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 제출하는 데 소유자 허락 없이 피고인들이 임의로 제출하는 것은 본인의 것으로 활용하려는 '불법영득의사'로 볼 수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징역 6월을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들이 횡령 사실 등으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만약 회사 대표가 횡령사실이 없었다면 돈 얘기를 먼저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대표의 횡령 사실 수사를 위해 관련 자료를 제출한 공익적 목적인 점을 판단해 달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심리가 끝난 후 배심원단은 1시간여 동안 평의절차를 거쳐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재판부 역시 배심원 의견을 받아들여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회계 관련 서류로 개인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 목적이 없어 보이며, 회사의 횡령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사기관 제출로 서류 반환이 늦어진 사실이 있으나 이를 불법영득 의사로 보기 힘들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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