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처음부터 유럽연합 참여에 있어 소극적이었다. 행보에 있어 뒤늦은 동참이 그러하고 유로화 공동사용도 거부하는 등 짐짓 한발을 뺀 태도가 마침내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통과라는 어마어마한 현실로 가시화된 셈이다. 유럽이라는 범주로 묶지만 앵글로색슨, 라틴, 게르만족 등 유럽사회를 구성하는 중요 인종들은 개성과 의식구조, 현실적인 처세 등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가령 대학에서 교수가 낙타에 대해 과제를 써오라 할 때 각 민족의 반응은 좋은 비유가 된다. 영국인 학생은 즉시 사막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사막에 텐트를 치고 망원경과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날 며칠이고 끈기 있게 낙타를 기다린다. 매일매일 관찰일지를 쓰는 것은 물론이다. 이윽고 낙타가 나타나면 움직임과 생태, 먹이, 배설물 등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여 기록한다.

그 보고서는 서론, 본론, 결론도 없이 낙타의 생태와 실생활에 관한 경험일지로 정확한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독일인 학생은 도서관으로 달려가 낙타에 관한 온갖 책과 자료를 수집하여 방대한 참고문헌을 모은 뒤 두문불출하고 집필하여 얻은 과제물 제목은 '낙타의 자아에 관하여'이다. 프랑스인 학생의 경우 과제를 받고난 뒤 며칠 놀다가 동물원으로 가서 한두 시간 가량 낙타우리 앞에서 낙타를 살펴본다. 우산 끝으로 콧구멍을 간질이고 그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그런 다음 재기발랄한 보고서를 단숨에 써내려 간다는 것이다.

좁은 땅에 수많은 국가가 어깨를 맞대고 살아야 하는 유럽에서 '따로 또 함께'를 외치며 유럽연합을 출범시켜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각자도생'의 본능이 이번 영국의 탈퇴를 통하여 표면화된 셈이다. 앞으로 펼쳐질 유럽연합 각국의 예측불허 생존경쟁 양상은 그래서 냉혹한 국제질서 구도에서 나날이 힘들어지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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