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즐풍(櫛風). 옛 선비들이 한 여름 무더위에 즐겨했던 피서법이다. 산속에서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을 헤치고 햇볕과 함께 바람을 쐰다. 삼국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전해지는 상투는 머리카락을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삐죽하게 맨 헤어스타일이다.

한 여름 더위에 상투를 튼 모습을 연상해 봐라. 얼마나 더위와 가려움 등으로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옛 선비들은 한 여름이면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으로 올라가 나무 그늘에 앉아 상투를 풀었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헤치며 그 속으로 바람과 햇살이 통하게 했다. 바람으로 머리카락을 빗은 셈이다. 바람은 무더위에 찌든 땀으로 인한 악취를 날려버렸다. 혹시 있을 머릿니도 따가운 햇살과 식물에서 방출하는 항균물질(피톤치드)에 살균됐다. 생각만 해도 시원하지 않은가.

'즐풍'의 한자어는 빗 즐(櫛))과 바람 풍(風)이다. '빗과 바람’이 어찌 선비들이 즐겨했던 피서법이 되었는가. 사연은 이렇다. 중국 순(舜)나라 때 우(禹)라는 사람이 양쯔 강에서 손수 삼태기와 삽 등을 들고 비바람을 맞아가며 치수사업을 벌였다. 당시 사람들은 우(禹:우나라 왕)의 이런 행위를 즐풍목우(櫛風沐雨)라 했다.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목욕을 했다."<당서(唐書)>.

치수사업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빗으로 머리카락을 빗을 시간도 없고 여유 있게 깨끗한 물에 목욕을 할 짬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는 얘기다. 이처럼 '즐풍목우'는 '禹'의 고생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객지를 방랑하며 온갖 고생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부지불식 '목우(沐雨)'가 사라져 '즐풍(櫛風)'만 사용되었다. 뜻도 변했다. 다름 아닌 옛 선비들의 피서법으로 말이다. 옛 선비들은 한 여름 산속에서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을 바람에 빗질하는 행위를 무엇이라 부를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이런 행위가 '우(禹)'의 행동과 같아 '즐풍'이라 불렀다. 하지만 빗물에 목욕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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