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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우 영창단조공업 대표… 3대 장인정신으로 망치사업 제2막

[기업人 점프in]
모친 권유로 가업 물려받아
경영·망치제조 등 지식습득
조선소서 특수용접망치 제의
상품 히트… 해외수출 성과도
“짐이었던 회사… 내삶의전부”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2016년 06월 20일 월요일 제9면     승인시간 : 2016년 06월 19일 15시 50분
국내 망치시장 점유율 70%를 자랑하는 영창단조공업.대를 잇고 있는 영창단조공업 3대 대표인 이건우(37·사진) 씨는 ‘가업을 잇기 싫었다’고 말했다.

영창단조는 할아버지인 고(故) 이규일 창업가가 국내 최초로 망치 생산에 단조공법을 적용하고, 아버지 이도종(67) 2대 대표가 일명 ‘빠루망치’ 뿐이던 시중의 망치제품을 다양화했다.

하지만 그가 대학교를 졸업한 2003년 당시 영창단조의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이 대표는 물류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등 ‘다른 삶’을 꿈꿨다.

“회사의 경영상황이 안 좋아졌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는 당시 다른 쪽으로 길이 열려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업을 잇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 대표는 끝내 망치를 만드는 것에 인생을 걸게 됐다. 어머니 배현숙 씨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녹여온 기업을 포기할 수 없었고, 눈물어린 호소로 이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것이 이 대표의 13년 고생길(?), ‘위기와 극복’으로 이어진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대표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맡고 보니 회사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IMF와 저렴한 중국제품의 범람, 2003년 공장 산사태 피해까지 악재로 쌓인 부채가 상당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마뜩찮았지만 어쨋든 3대째를 이은 장인의 정신을 이은 것 아니겠느냐”며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얼굴을 봐온 회사 식구들을 보면 책임감이 샘솟았고,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든 했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경영대학원에 입학,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숙식하며 용접 등 망치제조와 관련된 지식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경영관련 수업은 어떤 것이든 청강을 해서라도 빼놓지 않고 들었어요. 망치제조에 대해서도 제가 새로운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배웠죠.”

당시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택배시스템 활용의 확대, 업무지식의 사내 보급으로 ‘멀티플레이어’를 양산하는 등 혁신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가 직접 전한 업무 노하우는 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기다리던 사세 확대의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통영의 한 조선소에서 ‘특수용접망치’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이 대표는 망치제작에 잔뼈가 굵은 아버지, 큰 형처럼 여기는 권오율(47) 공장장 등과 힘을 합쳐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조선소 특수 용접망치’ 제작에 성공했고, 이 제품은 큰 ‘히트’를 치게 됐다. 히트상품의 등장은 기업의 인지도를 높였고, 제품의 해외 수출길까지 여는 등 큰 성과로 이어졌다.

현재 영창단조공업이 제작판매하는 제품은 한달 평균 2만~2만 5000개에 달한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2011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따 프리미엄 브랜드 ‘BHS(배현숙)’를 시중에 내놨고,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토르’ 역시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이들 프리미엄 제품들을 통해 국내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의 수출 확대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짐처럼 느껴질만큼 버거운 회사였지만, 지금은 선대의 유산이자 나의 삶이 됐다”며 “엔저(低)로 일본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고, 중국의 제품 품질도 높아지는 등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동안 위기를 극복해왔듯 이 역시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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