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동 아저씨돈까스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2.4세이니 하루 3번 식사를 한다면 평생토록 9만번의 식사를 한다. 우리는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음식을 삼키며 살고 있지만 정작 떠오르는 음식은 졸업식 날 먹었던 짜장면 정도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중구 은행동에 위치한 ‘아저씨돈까스’는 수만번의 식사 중에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이다. 독특한 맛이 있다거나 거창하고 비싼 집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몰았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시기를 겪었던 세대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1993년 개업한 아저씨돈까스는 경양식 식당으로 25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요즘 세대들이 본다면 촌스러울 수 있는 노란색 조명 등 예전에 볼 수 있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메뉴는 소박하다. 경양식답게 함박스테이크와 돈까스, 스파게티, 볶음밥 정도로 단출한 구성이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정통은 지키고 있다. 그날 쑨 스프가 앞서 등장하고, 주메뉴와 함께 ‘사라다’가 제공된다. 사라다, 샐러드가 아니다. 오리엔탈소스나 요거트드레싱 같은 거창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마요네즈로 만든 투박한 맛이지만 입에 넣는 순간 추억이 뚝뚝 묻어난다.

돈까스부터 소스까지 모두 직접 만들어 시중에서는 찾기 어려운 정겨운 맛이 입안을 감돈다. 고된 직장생활로 세파에 찌든 몸이 어느새 스포츠머리에 차이나 교복을 입고, 입에 소스를 가득 묻히며 돈까스를 먹는 소년으로 돌아간다. 돈까스 표면을 덮은 수제 데미그라스 소스의 찐득하고 달큰한 맛에 중독돼 칼을 수저 삼아 쓱싹 긁어먹었던 습관도 어느새 되살아난다. 스페셜정식을 시키면 나오는 ‘접시 밥’도 정겹다. 갓 지은 밥을 공기가 아닌 둥근 접시에 얇게 펴낸 접시 밥은 금새 식어 꼬들꼬들한 풍미로 돈까스와 금상첨화를 이룬다.

비싼 레스토랑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 경양식집은 저렴한 값으로 어린 나이의 소년·소녀가 외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큰 호사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성인이 돼 자녀와 함께 다시 찾는 명소로 변한 아저씨돈까스, 추억을 찾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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