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재발견 (26) 대전역 역전시장
6·25전쟁때 피난민들에 의해 개장
농수축산물 등 100여개 점포 영업
‘로컬푸드’ 신선… 단골 수십년째 찾아

이곳에 가면 그립고 또 낯익은 ‘냄새’가 난다. 사람과 흙, 생선, 모기향 등 비릿하면서도 투박한 냄새에 끌려 걷다 보면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서 있다. 강퍅한 도시생활에 마음이 지쳐있던 찰나, 시장 냄새를 통해 어려웠지만 푸근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대전의 관문인 대전역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인 ‘역전시장’은 아직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시장들이 초록 지붕에 덮이고, 매장도 성냥갑처럼 모두 똑같이 변해버렸으나 역전시장 뒷골목은 아직도 과거 풍경이 남아있다. 대전역지구대를 지나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 뜨거운 볕을 막으려 상인들이 펴놓은 알록달록한 파라솔 아래로 나무로 짠 가판대에 생선과 채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시장과 함께 나이를 먹은 상인들은 주름이 깊이 박힌 손으로 오늘 팔 물건을 손질하며, 오가는 손님이 눈길이라도 한번 주면 놓칠세라 흥정에 열을 올린다.

“자, 천원이유 천원. 아무거나 다 천원 골라잡으셔유.” 점심시간이 되긴 아직 이른 시간, 역전시장에 손님들이 붐비기 시작하자 상인들의 입이 바빠진다. 한 가게에 사람들이 북적이자 주인은 “오늘 마수걸이가 좋았나, 장사가 잘 풀리네”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역전시장 정문 인근 약국 앞 인도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한 소쿠리 담아 놓고,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값을 깎기도 덤을 얹어가기도 하며 손님과 상인과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어느새 손수레를 타고 들어왔던 고등어, 삼치, 오징어, 돼지고기, 어묵, 열무, 생강 등 수많은 물건이 검은 봉지에 실려 밖으로 나간다.

▲ 대전역 역전시장 입구. 정재훈 기자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로컬푸드(지역 농산물)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여기만큼 또 좋은 곳이 없다.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이 모이기 때문이다. 흙이 좀 묻어 있어도, 비린내가 나도 시장에서 파는 물건에는 활기가 감돈다.

역전시장은 6·25전쟁 무렵인 1950년 새벽에 여는 ‘도깨비시장’으로 시작됐다. 전쟁 당시 대전은 임시수도 역할과 함께 수십만명의 피난민이 밀집해 사람이 북적였고, 역사(驛舍)를 찾은 사람을 대상으로 장사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후 옥천과 금산, 논산, 서산 일대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이곳에 모여 팔리기 시작하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과거 대전역은 경부선뿐만 아니라 호남선과 전라선을 운행하는 열차도 탈 수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나 서민들이 애용했던 완행열차는 급행열차가 철도를 지나갈 때까지 정차하고 있어 승객들은 짬을 내 가락국수를 먹거나 역전시장을 들르기도 했다. 지금은 역도, 주변 환경도 모두 변해 시장을 찾는 이가 예전만 못하지만 수십년간 시장을 이용한 단골들은 잊지 않고 찾아온다. 농수축산물, 반찬, 떡, 분식 등 새벽부터 문을 여는 100여개 점포와 이제는 찾기 힘든 곤계란과 1000원 해장국 등 특색 있는 터줏대감이 시장을 지키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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