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나재필의 feel-2/2] 허영호 "도전은 아무도 하지 않은 일 할때 의미…꿈을 실현하려면 도전하라"

[창간 26주년 특집] 산악인·탐험가 허영호 특별인터뷰 (충북 제천출신)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6년 06월 10일 금요일 제13면     승인시간 : 2016년 06월 09일 18시 13분

982033_340340_4829.jpg
▲ 세계 최초로 3개 극(極)지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충청이 낳은 세계적 산악인인 허영호 대장이 충청투데이 본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검붉게 탄 그의 얼굴에서 탐험가의 혼이 느껴진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나재필의 feel-1/2] 허영호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과정 가상현실 카메라에 담았죠" 
전편에서 계속

 -산악계의 외톨이라는 말은 뭔가.
"(정색을 하며) 외톨이가 아니라 스스로 뛰쳐나온 것이다. 산악계 쪽 일에 관여를 안 하고, 행사도 안 나가고, 산악인과 잘 만나지도 않는다. 등반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등반이란 본인이 하는 거니까. 그들의 등반은 그들이 하는 것이고, 내 등반은 내 등반이다."

―후배들과 원정을 꾸리지 않는 이유인가. 
"큰 원정대를 꾸려 가면 마찰이 많다. 대원들이 말을 안 듣고 대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약속을 안 지키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돈 문제로 마찰을 몇 번 겪고는 손을 들었다. 원정 비용을 얼마씩 분담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지켜야한다. 그런데 약속을 잘 안 지킨다. 서약서를 써도 꽝이다."

1999년 허 대장은 한국산악회 원정대장을 맡아 에베레스트의 북벽 루트에 도전했다. 원정대는 고난도 벽 앞에서 실패하고 되돌아왔다. 문제는 결산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가 원정비용의 일부를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상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은 이후 산악계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전체 예산에서 지출경비가 4000만원쯤 넘었다. 모두 영수증이 있고 수차례 점검을 했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산악회도 책임을 안 졌다. 그런데 내게 책임지라고 했다. 나는 단지 대장을 맡아서 갔을 뿐인데. 그런 시비가 2년을 끌었다. 결국 내가 아파트 팔아서 다 갚아주고, 한국산악회에 제명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가. 
"사람들이 싫으니까 혼자 간다. 산악계에 꼭 남아있어야 등산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혼자서도 스폰서 찾아서 등반하면 된다. 난 남들에게 준 것도 없지만 피해준 것도 없다."
허 대장의 웅변은 일리가 있었다. 원정은 낭만이 아니다. 원정대 내부는 격렬한 삶의 현장이다. 인간은 극한상황에 놓이면 이기심과 생존 본능에 지배된다. 대원 간에 불신과 원망, 적대감이 독가스처럼 피어오른다.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순간 원정대는 깨진다. 원정 과정에서는 어떤 고통과 불만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모험심이나 탐험심이 좀 적은 것 같다. 

"청소년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국민성이 그런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 고행이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고는 누구든 최고가 될 수 없다. 83년 악마의 정상 마나슬루를 무산소로 등정했다. 여기서만 한국인 17명이 죽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한하다. 원래 의학적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무산소로 갈 수 없다. 정상의 기압과 공기가 원래의 1/3정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누구든지 정신력과 체력을 구비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죽음으로 끝난다. 등반과 탐험은 정신력이 먼저고 그 다음이 체력이다."

▲ 허영호 대장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360도 VR 카메라로 웅장한 산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촬영장비로는 삼성전자의 기어360이 사용됐다. 허영호 대장 제공
-영하 50℃에서 큰 것과 작은 것(대·소변)은 어떻게 해결하나. 
"소변은 서서 보는데, 바람을 꼭 피해야한다. 안 그러면 중요한 곳에 동상이 생긴다. 물론 소변보는 즉시 고드름이 달리지는 않는다. 큰 거 볼 때가 문제인데 강풍(블리자드)이 불기 때문에 허리춤 끌러놓고 힘주기 직전에 하나 둘 셋하고 신속하게 봐야지, 길게 보면 동상이 생긴다."(웃음)

-스폰서 문제가 힘들지 않나. 
"북극 탐험 같은 경우, 대원 4~5명 정도의 규모에 3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다. 에베레스트는 입산료만 1억이다. 작은 등반대의 경우는 2억 정도, 10명 이상 등반대의 경우는 3억 정도 예산 확보를 해야만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팀들이 훈련하고 준비해도 실행에 못 옮기는 경우가 많다. 스폰서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과의 등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들을 히말라야에 처음 데려간 것은 다섯 살 때다. 2010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정복한 것은 우리 부자(夫子)가 세계 최초다. 에베레스트를 가장 먼저 정복한 힐러리경도 부자가 모두 올랐지만 동시에 정상에 서지는 못했다. 당시 아들과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원정 대원들의 동의를 어렵게 얻어냈다. 정상에서 아들을 부둥켜안고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들과는 13개국을 동반 탐험했다. 당시엔 1000만원 정도 돈만 모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무조건 떠났다."

허 대장은 1983년 마나슬루봉 도전을 4개월 앞두고 결혼했다. 그래서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1년에 히말라야 두 번만 다녀오면 3개월씩 6개월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가족 전체가 탐험과 동반에 따라 나선 일도 많았다고 한다. ☞ 20대여성이 지루성피부염이라면? 

-파일럿 면허도 갖고 있다. 
"초경량 비행기(폭 10m·길이 5m·무게 220㎏·RANS S-12 66마력 단발기) 조종 면허다. 어릴 적 꿈이 파일럿이었다. 그 꿈을 이룬 것이다. 9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으니 꽤 오래된 일이다. 그동안 제주도와 독도, 마라도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우리 영공의 동·서·남쪽 끝자락을 도는 10시간에 걸친 1800㎞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청주국제항공엑스포 때도 날았다."

▲ 에베레스트는 곳곳에 아이스 폴(ice-fall·빙하의 경사가 폭포처럼 된 곳·사진)이 도사리고 있다. 빙하가 제멋대로 갈라진 크레바스와 빙탑이 도처에 생겨 루트를 뚫고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허영호 대장 제공
-더 큰 꿈이 있을까. 
"5대양 7대륙 최고봉을 경비행기로 등반하는 것이 목표다. 총거리가 10만3000㎞(총 30개국)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엔 14억원이 필요하다. 태평양을 건너는 것과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이 최대 난제다. 이보다 먼저 경비행기를 몰고 북한에 가서 백두산을 등반해 보고 싶다. 중국 쪽 백두산은 수차례 올라가봤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의 산을 밟고 싶은 것이다."

-체력은 타고난 것인가. 
"어릴 때 별명이 허깨비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밤에 잠을 자면 가위에 눌리곤 했다. 군대 다녀와서 결혼하기 전까지 54㎏이 넘어본 적이 없다. 산에 열심히 다녀서 좋아진 것 같다.(웃음) 담배는 처음부터 배우지 못했고, 술은 반병만 마셔도 취한다. 등반할 때도 철칙이 있다. 산에 오를 때 70%정도의 힘을 쓰고, 내려올 때 30%정도 쓴다."

그는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리는 것에 불과하다며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을 수차례 강조했다. 

-최악의 경험은. 
"남극과 북극을 탐험할 때는 영하 50℃, 체감온도 65℃를 경험했다. 북극을 탐험할 때는 1800㎞를 4개월간 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04일간 목욕을 하지 못했다. 탐험을 마치고 샴푸로 머리를 5번이나 감았는데도 비듬이 뚝뚝 떨어지더라."

-아직도 남은 도전이 있는가. 
"도전이란 나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다. 중단은 없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8848m 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1박 하는 게 꿈이다. 이왕 등산을 시작했는데 세계의 지붕 꼭대기에서 하룻밤 보내야 할 것 아닌가. 이번 에베레스트 VR 등정 때도 꼭 1박하고 싶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못했다. 만약 실행했다면 얼어버렸든지, 강풍에 날아갔을 것이다."

허 대장을 만나며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거의 말이 떠올랐다. "참다운 목표는 최고의 한계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완성은 끝이 없다." 끝없는 도전과 극기로 산과 바다와 하늘을 정복한 남자. 허 대장은 그곳이 어디든, 목적지를 향해 두려움 없이 첫발을 내딛는 '극한의 탐험'을 꿈꾼다. 그의 두 어깨에서 높은 산이 보였다. 심장의 폐활량까지도 갉아먹을 푸른 맥박이 느껴졌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과감하게 버리고 진정한 '산'으로 남았다. 이목을 받고 있는 스타 산악인보다 음지에서 묵묵히 산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는 전설이었고. 앞으로도 전설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허영호 대장 프로필 
△1954년 충북 제천 출생 △1989년 청주대 체육학과 졸업 △1994년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졸업 △1982년 5월 네팔 히말라야 마칼루(해발 8463m) 등정 △어드벤처 그랜드슬램(지극 3극점+세계 7대륙봉 완등) 세계 최초 달성 △지구 3극점:에베레스트(8850m·1987년 12월 22일 등정) 남극점(1994년 1월 10일 도달) 북극점(1995년 5월 7일 도달) △세계 7대륙 최고봉: 1987년 12월 22일 에베레스트~1995년 12월 11일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히말라야 8000m급 등정:마칼루(1982년), 마나슬루(8156m·1983년 무산소 등정) 에베레스트(1987년, 1993년), 초오유(8201m·1997년) △1983년 히말라야 마나슬루·1987년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1989년 히말라야 로체 단독 등정 △1991년 북극점 원정 △1992년 남미 안데스 아콩카과·1992년 북미 매킨리 단독 등정 △1992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1993년 남극점 원정 △1995년 북극점 경유, 북극해 횡단 △1995년 남극대륙 빈슨 매시프 등정 △1997년 티베트 초오유 등정 △1998년 러시아 엘브르즈·2003년 몽블랑 등정 △2007년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가족사항:아내, 아들, 딸 △좋아하는 음식:누룽지 라면탕 △수상경력: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http://www.cc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