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 산악인·탐험가 허영호 특별인터뷰 (충북 제천출신)
세계 7대륙 최고봉·지구 3극점 동시에 성공해 ‘어드벤처 그랜드슬램’
북극 탐험할땐 4개월간 1800㎞ 걸어 … 104일간 얼굴 못씻기도
아들과 히말라야 동시 등반땐 감격 … 어릴적부터 13개국 함께 탐험

▲ 세계적인 등반가 허영호 대장이 개인통산 5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허영호 대장 제공
세계 최초로 3개 극(極)지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충청이 낳은 세계적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허영호(62·한국히말라야클럽·사진) 대장을 만났다. 그가 충청투데이 창간 26주년 특별인터뷰를 위해 본사를 방문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을 가상현실(VR) 카메라에 담아 귀국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검붉게 탄 그의 얼굴에서 모험적인 삶이 단박에 읽혀줬다. 그는 등반 외에도 경비행기로 하늘을 섭렵하고 스킨스쿠버로 바다를 누비고 있다. '대장'이란 낱말은 그래서 그의 이름 뒤에 훈장처럼 따라 붙는다.

-신기원을 또 이뤘다.

"개인통산 5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이다. 이는 내가 보유하고 있던 국내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을 내가 또 경신한 것이다. 특히 등반 전 과정을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것도 세계에서 처음이다."

에베레스트에서는 영하 40℃의 혹한과 강풍을 동반한 블리자드(눈보라)로 인해 디지털기기는 물론, 필름카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허 대장은 이런 악천후 속에서도 세계 최고(最高) 높이의 파노라마 영상을 생생하게 담았다. 기업 후원 없이 자비 2억원이 들었고, 촬영장비로는 삼성전자의 기어360이 사용됐다.

-이번 촬영으로 에베레스트에 가지 않은 사람들도 VR 기기를 통해 마치 자신이 에베레스트에 있는 것과 같은 간접경험이 가능해졌다. 유료로 제공되는가.
"전시회, 강연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번 등반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반과정을 보며 도전정신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도전은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꿈을 실현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롭게 생각하고 실천하다보면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허 대장은 높은 산을 오르는 수직 탐험과 혹한의 북극해와 남극대륙에 도전하는 수평 탐험을 결합시킨 최초의 한국 탐험가다. 1982년 첫 해외원정으로 마칼루봉(해발 8463m) 정상에 선 그는 이듬해 마나슬루(8156m)를 무산소로 등정했으며 1987년 12월 22일 세계 등반사상 3번째로 겨울철 에베레스트(8850m) 등정에 성공하며 세계적 산악인 반열에 올랐다. 세계 7대륙 최고봉과 지구 3극점을 동시에 달성하는 세계 탐험계의 의미 있는 기록인 이른바 '어드벤처 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한 것이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특별히 놀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동네(충북 제천) 형들과 산에 가는 것이 좋았다. 사실, 해발 8000m 넘는 산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을 이겨낸 사람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이 탐험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

-탐험의 길이 무조건 설레는 것은 아닐 텐데.
"왜 쉽겠는가. 무산소로 에베레스트에 올라갈 땐 살려달라고 절규를 수십 번도 더 했다. 한겨울 에베레스트를 등반 시에는 영하 50℃속에서 쉬지 않고 걸어야한다. 영하 40℃면 바닷물도 언다. 상상이나 가는가. 북극횡단이나 남극횡단 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함께 한 원정대에선 단 한 차례도 사망자가 없었다. 이 또한 유일하지 않은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박영석, 엄홍길 원정대에선 10여 명씩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내 주변에선 동상 걸린 친구도 없었다. 도전에 나설 때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최고봉 등정 같은 건 자연의 거대한 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만큼 잔소리를 많이 한다. 등반대원들은 텐트에 들어오면 꼼짝도 안하려고 한다. 그럴 때도 발을 씻으라고 잔소릴 하게 되더라."(웃음)

▲ 영하 40℃의 혹한과 강풍을 동반한 블리자드(눈보라)로 인해 등반이 어렵기로 유명한 에베레스트에 오른 허영호 대장(맨 왼쪽)은 “도전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꿈을 실현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영호 대장 제공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했지만 히말라야 14좌 등반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선택의 문제 아닌가. 14좌 등반 대신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선택한 것뿐이다. 14좌 등반이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길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에베레스트를 겨울철에 등반한 예는 나 이외에 없다."

허 대장은 새롭지 않은 것은 마다한다. '처음' 가는 길만 택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며 (첫)길을 만들고, 길을 튼다. 남이 간 길은 '헌 길'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처음'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등정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돈 벌기와 거리 멀다는 건 모든 이가 다 인정하니 아예 맘이 가볍다. 하지만 탐험에 나서지 않을 때도 바쁘다. 새로운 탐험 계획도 세워야 하고 방방곡곡 다니며 강의도 한다. 이틀에 한 번꼴로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꽤 쏠쏠한 벌이다. 자동차 1년 주행거리가 1만㎞가 넘는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다 보니 1년이면 똥차가 된다."(웃음)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하지만 고향 얘기를 묻자 다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산악인을 오히려 고향이 더 홀대하고 몰이해(沒理解)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해 섭섭한 감정이 있나.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배출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내 고향은 존경도, 배려도 없다. 혹 먹고살기 위해 상업등반이라도 할라치면 뒤에서 손가락질이나 하고 외면한다. 되레 인근 단양지역에서 허영호 등반길을 만들어 열심히 홍보를 하더라. 고향은 유산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큰일을 해냈을 때는 그만한 가치를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 욕심인가."

-그래도 고향은 고향 아닌가.
"보편적 상식을 뒤엎고 '허영호'라는 콘텐츠를 방치하는 건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어리석다는 생각마저 든다. 충청의 이름으로 무엇엔가 도전하고 싶은데 제안도 없고 생각도 없다. 물론 탓할 수는 없다."

-제천엔 누가 사는가.
"첫째·둘째 누님, 둘째 형님, 여동생이 산다."

-허영호 VS 엄홍길 얘기를 자주 듣는다.
"모두들 스타가 됐지만 그들이 갔던 모든 길은 내가 먼저 디뎠다. 내가 간 길들을 그들이 잘 따라줬다. 좋은 후배들이다. 나이로도 1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전성기를 보낸 시기가 다르고, 한창 산에 오를 때 장비 조건도 차이가 있다. 모든 성과는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피와 땀이 함께 일군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더 많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지금도 엄홍길과는 가끔 만나서 허물없이 지낸다."  

▶후편에서 계속 
[나재필의 feel-2/2] 허영호 "도전은 아무도 하지 않은 일 할때 의미…꿈을 실현하려면 도전하라"

▲ 허영호 대장이 충청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창간 26주년을 축하하는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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