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권 논설위원

요즘 지방분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다.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역설한 티부(Tiebout)에 따르면 분권화된 각 지방정부에서는 지방의 재정적, 사회적,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조세-서비스 묶음을 제시하고 사람들은 '발에 의한 투표(voting on the feet)'를 통해 자신의 선호에 가장 부합하는 조세-서비스 묶음을 제시하는 지방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특정 지방정부 구역에의 정착을 통해 자신의 선호를 표출하고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각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조세-서비스 묶음이 다양할수록 개인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자신들의 진정한 선호를 표출하고 충족시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집권보다는 지방분권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지방분권 구조는 독점화된 중앙집권 구조에 비해 시간에 따라 혁신을 증대시키고 지방정부간 경쟁 압력을 제공해 지방정부로 하여금 가장 효율적인 생산기법을 적용하게 만듦으로써 지방 공공 서비스 생산에서의 정태적, 동태적 효율성을 높여 준다. 한편 세계경제는 무국경 경제, 지구촌 경제로 급격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거시적 환경변화 속에서 지역경제 차원을 본다면 "지역적인 특색이 잘 드러나는 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다(local is global)"고 말할 수 있다. 지방분권 구조는 각 지방정부가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창의력을 발현시켜 준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점점 나아져 가고 있는 추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에로 이관돼 지방분권적인 구조를 갖추기에는 현실적으로 두 가지의 큰 제약이 있다.

그 하나는 중앙정부나 집권층이 마지못해서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해 왔다는 점이다. 지방정부를 통해 지역주민들을 동원함으로써 정권의 안정과 유지를 도모해 온 집권층으로서는 중요한 정권유지 수단 가운데 하나를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중앙정부 쪽의 관료나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집중된 권한과 독점적인 이익 중개기능을 향유하고 있었기에, 이것들을 지방정부에 넘겨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여기에는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전문성이나 자질이 중앙정부 공무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과 자치단체장이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과잉동조해 근시안적인 정책이나 인기성 정책에 몰두한다는 우려가 밑에 깔려 있다. 지방정부에 실질적 권한을 넘겨주더라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지방정부에로의 권한 이양을 꺼리고, 설사 넘겨주더라도 실질적인 통제권은 계속 중앙정부가 쥐고 있으려고 한다. 그 결과 중앙정부의 실질적 통제 → 지방정부의 자율적 능력 미발달 → 중앙정부의 통제라는 계속적인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정권 초기에는 지방분권을 부르짖지만 시간이 흘러 기득권층에 흡수되고 나면 흐지부지돼 왔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지방분권을 제대로 하려면 기득권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분권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시민단체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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