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거풍. 쌓아두었거나 바람이 안 통하는 곳에 있어 습기 찬 책과 옷 등 물건을 바람에 쐬어주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

주로 서고(書庫)에서 거풍이 이뤄졌다. 서고 책들은 습기가 많은 여름에는 부식과 해충 등으로 파손 우려가 많다. 따라서 눅눅해진 책들을 꺼내 바람을 쐬고 햇볕에 말려야 했다. 봄과 가을 맑은 날에 거풍이 거행됐다. 포쇄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와 충주사고 등에서 2~4년에 한 번씩 서고의 책을 모두 꺼내 말리는 포쇄 제천행사를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책을 말리는 뜻인 거풍이 언제부턴가 좀 다르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옛 선비들의 피서 법으로 말이다. 옛 선비들은 폭염에도 목욕이 쉽지 않아 그저 그늘에서 부채 사용하기가 고작이었다. 함부로 몸을 드러내고 시원한 물에 몸을 씻는 것은 사대부 양반들의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시사철 사타구니는 늘 음습해 악취와 세균을 품고 다녀야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거풍이었다.

거풍은 음력 9월 9일(重九日) 전후로 이뤄졌다. 이때가 되면 선비들은 점심을 먹은 뒤 산으로 올라간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서고의 책을 꺼내 펼쳐 바닥에 뉘어놓고 바람과 햇볕을 대하듯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태양 쪽으로 향해 벌렁 눕는다. 상상 만해도 무척이나 민망스러운 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여건으로는 선비들만 즐길 수 있는 최상의 피서 법이었다. 땀에 찌들었던 곳의 시원함은 물론 찝찝함과 가려움을 한 방에 날려 버렸던 것이다.

이때 시원한 바람과 햇볕이 땀을 씻어줬지만 오랫동안 음습으로 기생했던 세균과 악취는 과연 무엇이 해치웠단 말인가. 식물에서 방출하는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다. 물론 선비들이 거풍을 즐길 당시는 피톤치드라는 용어도 없었고 어떤 성분에 의해 사타구니의 세균이 박멸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윗선비들의 행위를 따랐을 뿐이다. 피톤치드는 1937년 러시아 생화학자 토킨에 의해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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