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김영란)'이 오기 전에 '밥'을 고민해야 할 처지다
[충청로]

▶악취가 풍길 정도로 썩었던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집권한 이후 180도 바뀌었다.

그는 부패방지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전담조직을 세웠다. 부패와의 전쟁도 시작했다. 장관이었던 친구마저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단죄했다. 반면 공무원들의 연봉은 대폭 올렸다. 처우가 좋아지니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싱가포르 총리의 연봉은 약 25억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약 5억원을 받으니 가히 파격적이다.

▶김영란법을 놓고 업계·일반인의 '온도 차'가 크다.

우스갯소리로 ‘경제마비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엔 허점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접대비의 횟수를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행령 6조는 사교·의례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품의 액수를 3·5·10만원이하로 규정했지만 '몇 번까지'라는 범위는 없다. 하루에 법인카드를 수십 번 긁더라도 각각의 전표가 3만원을 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이 어렵단 얘기다. '쪼개기 결제'처럼 5만원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선물 공세를 펼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에게 지나치게 '면죄부'를 준 점도 문제로 꼽힌다. 후원금 모금과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으는 행위가 예전처럼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도둑놈은 안 잡고, 애먼 사람을 잡는 꼴이다.

▶법을 어긴 사람을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적극적인 내부고발자나 결정적인 증인 확보가 없이는 법 자체가 허당이다. 가령, 밤 11시59분에 3만원을 결제하고, 2분 뒤인 12시 1분에 3만원을 결제해도 두 건의 날짜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걸리지 않는다. 식사 자리에 배석하지 않은 사람을 참석했다고 속여 '머릿수'를 늘릴 수도 있다. 이밖에도 더치페이로 계산하고 나중에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식사비를 돌려주는 '페이백', 식당 주인과 말을 맞춰 일단 외상으로 거래하고 나중에 기회를 봐서 일괄 정산하는 편법, 음식점이나 술집을 자주 옮겨 다니며 결제하는 '메뚜기 결제' 등의 꼼수가 등장할 여지가 있다.

▶‘김영란법’을 운운하기 전에 일단 더치페이(Dutch pay·각자 내기)는 깔끔하다.

얻어먹는 놈은 계속 얻어먹으려고만 하고, 사는 놈은 죽어라고 사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못 내겠다’고 달려들면 얄밉기까지 하다. 더치페이를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굴욕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건 허세다. 공동체사회에서 밥값을 일일이 걷어서 내는 게 불편하지만 밥은 밥이고, 법은 법이다. 공짜밥은 액면가로 공짜지만, 함의의 가격은 공짜가 아니다. 거저 주는 ‘돈’에는 반드시 ‘독’이 묻어있다. ‘거지에게 주는 빵’이라는 뜻의 뇌물, 우린 그 알량한 공짜밥을 먹으며 거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단호히 거부할 것인지를 ‘법(김영란)’이 오기 전에 ‘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처지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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