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후반기 안정적 운영에 방점
향후 반기문 대망론 역할 주목

▲ 이원종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알쫑이'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충북 출신 첫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제천 봉양 출신의 한 산골 소년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2인자'가 된 것이다.

알쫑이는 '알토란 같은 원종이'라는 뜻으로 이 비서실장의 별명이다. 그만큼 하는 일이 ‘똑부러지고 당차다’는 비유다.

이 비서실장은 지사 시절 '손 편지'를 즐겨썼다. 애경사와 관련해 그의 정성이 담긴 손편지는 직원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지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특유의 성실성과 친화력은 그의 장점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이 비서실장은 제천고를 거쳐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국립체신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체신부 서기보로 공직에 입문했다. 공중전화 수금원으로 일한 이 비서실장은 야간 대학을 졸업한 뒤 성균관대에 편입해 1966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 비서실장은 관선·민선 등 충북지사를 3차례나 역임했다. 관선 서울시장도 지냈다. '행정의 달인'이란 닉네임은 그때 붙었다. 지금도 충북도와 서울시 공무원들이 뽑는 역대 단체장 중에 1위는 늘 그의 차지다.

불운도 따랐다. 충북지사 시절에는 청주 우암상가 붕괴사고로 지사직을 접었고 서울시장 당시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시장직을 그만뒀다.

이 비서실장은 이후 청주로 내려와 서원대학교 총장을 맡는다. 당시 학내분규가 극심했던 서원대의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쳤다. 1998년에는 자민련 소속으로 충북도지사에 당선됐고 2002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재선에 성공했다. 이 비서실장은 3선 도지사 도전이 유력했지만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해 도민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비서실장은 충북지사 재임 당시 많은 화제를 낳았다. 2005년 대전과 천안을 제치고 고속철도 분기역을 오송에 유치한 일등공신이고 오송을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육성한 것도 그다. 당시 이 비서실장은 한나라당과 선을 긋기도 했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이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는 충북당 당원"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민선 2-3기 충북도정 슬로건은 '바이오토피아 충북'이었다. 이 비서실장은 지사 퇴임 후 지역발전위원장으로 일할 때도 오송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비서실장의 기용은 '반기문 대망론'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반 총장과 이 실장은 충청권 모임인 청명회 회원이기도 하다. 향후 반 총장 영입에 이 실장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걱정도 들린다. 여전히 청와대를 쥐락펴락 한다는 소위 '문고리 3인방'과의 문제다. 실세형 비서실장이 아닌 이상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에 입성한 이 전 지사. '행정의 달인'인 그가 정치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비서실장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 낼 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순철 기자 david816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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