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호리병 속의 하늘>
[박일규 서예이야기]

호중천(壺中天)이라고도 한다. 좁은 곳에 들어박혀 혼자서 남모르게 즐기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호중천지(壺中天地)를 즐기고 있다네'라든가 '호중거(壺中居)라네' 하고 말한다. 소천지 혹은 별세계란 뜻이다.

그리이스 말의 미쿠로스·코스모스, 영어의 마이크로코즘(microcosm)과도 같다.

여남(汝南)이란 곳에 시장(市場)의 감독인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시장에서 약을 파는 노인은 가게 앞에 늘 항아리를 하나 걸어두고 있었다. 장사가 끝나면 노인은 언제나 그 항아리 속으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비장방이 어느 날 그것을 보고는 이상히 여겨 노인을 따라 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항아리 속에는 훌륭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호화스런 방이 있고, 미주가효(美酒佳肴)가 가득 진열돼 있었다. 그 곳에서 노인과 술을 실컨 마시고 다시 항아리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로 ‘후한서 방술전’(後漢書 方術傳)에는 이 약을 파는 노인이 선인(仙人)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런 어느날 옹(翁)은 비장방(費長房)을 찾아와 “나는 선인(仙人)인데, 과실이 있어서 인간세계로 내려왔었다. 이제 이곳에서 떠나게 돼 하직하려 왔다. 아래에 술을 가지고 왔으니 함께 마시자”고 했다.

당나라 시인 원진의 시에 호중천지건곤외(壺中天地乾坤外·호리병속 천지는 건곤 밖에 있고)라는 구(句)가 있다. 이 약장 할아버지는 죄를 지어 하늘에서 지상으로 유배된 선인(仙人)이며, 이름을 호공(壺公)이라 했다. 이 고사에서 비롯해 도가(道家)에서의 ‘호중천리’라는 문자는 별천지 별세계 선경을 의미하게 됐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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