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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맞선 ‘쉼없는 질주’… 지역 대표기업 부상

[충청 건설人] 박해상 우석건설 대표
신문배달·복덕방 등 경험 다양
좋은 집 동경… 건설업계 도전장
IMF 등 시련에도 의지 못 꺾어
도시형 오피스텔 등 시리즈 대박
오랫동안 기억될 ‘명장’되는게 꿈

이승동 기자 dong79@cctoday.co.kr 2016년 05월 11일 수요일 제9면     승인시간 : 2016년 05월 10일 19시 53분
우석건설 박해상(68) 대표는 '일'하는 사람이다.

‘잠 잘때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는 그의 신념이 말해주듯 열정과 도전정신, 성실을 빼놓고는 ‘박해상’이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

난관에 부딪힌 순간에도 남들이 우물쭈물할 동안 박 대표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고민했고 고민이 끝나면 그 즉시 돌진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듯 박 대표가 흘린 땀방울은 결실이 되어 돌아왔다. 시공능력평가 전국순위 172위, 충남순위 6위 시평액(1151억 2300만원) 등 지역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바로 결실의 산물이다.

우석건설을 대한민국 건설시장에 당당히 내놓은 박 대표지만 어린시절의 박 대표는 말그대로 '흙수저'의 전형이었다. 흔히 말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등록금이 싼 국민중학교로 재입학해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박 대표의 당당함은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다. 가난이 싫어 어두운 세상 속으로 숨어드는 사람도 많았지만 박 대표는 오히려 가난한 삶을 통해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방법을 터득했다.

박 대표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싸웠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시간에 저는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배달을 다녔죠.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까지 가난해지는 것 같아 움츠려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가난이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신념을 심어주었습니다.”

박 대표는 신문배달 뿐 아니라 호텔리어, 복덕방 주인, 고물상, 백화점 수입상품 판매원, 요식업 등 범죄가 아닌 돈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봤을 정도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청년 박해상’은 서울 YMCA에서 운영하는 호텔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7성급 호텔에서 8년간 호텔리어의 삶을 살았다. 지금의 예의범절과 절제된 매너, 품격있는 언행 등을 익힌 것도 그때였다.

이후 1977년 28살이 되던 해, 행정수도 이전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호텔을 나와 복덕방을 차렸다. 벌써 40여년전의 일이니, 젊은 시절 박 대표의 안목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행정수도 이전은 물거품이 됐고, 부동산 시장 추락과 함께 박 대표의 사업도 무너졌다. 자전거 폐달을 멈추면 자전거가 넘어진다는 경영철학을 가슴에 새긴것도 이때쯤이다.

박 대표는 복덕방을 접은 후 공병 수거, 표고버섯 재배, 수입 상품 판매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복덕방 경험을 밑천으로 본격적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좋은 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래서 ‘건설’이라는 낯선 경험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죠.”

40여년 전 그의 작은 결심은 우석건설의 모태가 됐고, 그 오랜 시간동안 쉼없이 패달을 밟아야하는 이유가 됐다.

건설업을 시작한 후 주택사업 연대보증으로 인한 사업 실패, 곧바로 찾아온 IMF까지 크고 작은 시련들이 찾아왔지만 그 무엇도 박 대표의 의지는 꺾지 못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과 가족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이러한 노력들은 도시형 오피스텔 ‘호수의 아침’, ‘세종의 아침’, ‘행복의 아침’ 등 ‘아침 시리즈’로 이어졌고 메이저 건설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박 대표의 도전은 끝이 없는듯 보인다. 최근 세종시의 모델인 된 말레이시아의 신행정수도 푸트라자야에 머문 뒤부터 새로운 구상에 들어갔다.

“벼랑 끝에도 서봤지만 궁지에 몰리니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 길이 보이더군요. 남들이 아무리 추켜세워도 저는 아직 성공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서죠. 하지만 먼 미래에 대한 목표는 분명합니다. 건설에 있어서만큼은 오랫동안 기억될 ‘명장’으로 남고 싶다는 것이죠. 이 꿈이 이뤄지는 날 남들이 아닌 저 스스로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청권을 넘어 대한민국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명장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여유있는 삶을 포기한 박 대표가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날이 성큼 다가오길 기원해본다.

이승동 기자 dong7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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