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몸살. 몸이 몹시 피로해 일어나는 병이다. 팔다리가 쑤시고 느른하며 기운이 없고 오한이 난다. "몸살기가 있어서 어제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순수 우리말 같지만 우리말과 한자어가 합쳐진 말이다. 몸과 살(煞). 몸에 '煞'이 들어있다는 얘기다.

'煞'. '죽이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사람을 해치는 흉신(凶神)의 지독한 기운'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일듯한 병리징후나 증상을 오감으로 느끼는 병이 몸살이다. 대부분 이불 덮고 땀 쭉 흘리면 낫는 줄 알고 예사롭게 여기지만 이처럼 몸살은 무서운 병이다.

'煞'하면 무엇보다 급살(急煞)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몸살보다 무척 악독한 병이다. 일단 급살을 맞으면 곧바로 죽음이다. 어떤 명의치료나 처방도 불가능하다. 무척 갑작스레 찾아오는 지독한 기운이어서 손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살(煞)의 용례를 보자. 참 많다. '살'이 가서 발목이 부러졌다. 일이 잘 되가니 이제 '살'이 내린 것 같다. '살'이 돋아 이틀 동안 꼼짝 할 수 없었다. '살'이 박힌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살'이 낀 날인지 잘 보고 이삿날을 잡아라. '살'이 센 여자는 결혼상대로 부적합하다.

몸살은 사회병리 현상으로도 많이 쓰인다. 산이 몸살을 앓는다. 등산객이 너무 많아 갈수록 등산로가 넓어지고 깊이 패여 나무뿌리가 드러나 보기 흉하다. 쓰레기도 마구 버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천 역시 몸살을 앓는다. 각종 쓰레기와 오·폐수 방류로 물이 오염돼 감을 일컫는다. 고속도로는 툭하면 교통 혼잡으로 몸살을 앓는다. 도시는 도덕의 타락으로 몸살을 앓는다. 자연 상태의 몸살은 그나마 치료가 가능하다.

치료가 무척 어려운 몸살이 있다. 정치몸살. 희생 속에 일모불발(一毛不拔)이 웅크린 이율배반의 정치풍토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골이 깊은 것 역시 불치 이유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정말 우리 정치에서 새순이 돋아날까? 우문(愚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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