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는 ‘골목상권 상징들’
1990년대 상징들 ‘역사속으로’, 불경기·경쟁 밀려 줄줄이 폐업
남는것 없는 장사에 한계 느껴, 주인 가게 팔고 동네 떠나기도

▲ 20일 문을 닫게 되는 대전 내 한 슈퍼마켓의 모습. 남은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 판매 중이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각 동네와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던 슈퍼마켓, 오락실 등이 역사의 뒷켠으로 사라지고 있다. 슈퍼마켓과 오락실은 1990년대 골목 상권의 상징같은 존재.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심한 불경기에 치이고 상권 경쟁에서 밀려나 점차 ‘추억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18일 기자가 직접 만나 본 슈퍼마켓과 오락실 업주들은 매상 추락으로 가게 문을 닫기 위한 준비를 하거나, 앞날을 위한 뾰족한 대안이 없어 ‘할 수 없이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대전 서구의 한 골목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도 씨 할아버지(78)는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700원 아이스크림, 3개 1000원’이라고 써진 종이가 나붙은 슈퍼 안에서 할아버지는 “더이상은 버티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997년 점포를 인수한 후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가게를 운영해왔지만, 근래 몇 년 사이 심한 불경기로 말 그대로 ‘남는 것 없는 장사’를 이어게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많이 나올 때는 하루에 올린 매상이 100만원인 날도 있었지만, 요 몇년 사이에는 장사가 잘 돼 봤자 30만원도 안 나와요.” 1300원인 소주 1병을 팔면 190원, 담배 1갑(4500원)은 430원이 할아버지의 몫으로 남겨진단다. 마진율이 1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하루 온종일 가게를 지키고 있어봤자 3~4만원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30평(10㎡) 남짓되는 크지 않은 가게지이만 아끼고 아껴도 다달이 전기세가 40만원에 육박한다.

나이가 적지않아 하루 종일 장사가 쉽지 않지만 종업원을 사서 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는 “이미 가게는 팔렸고, 20일 동네도 뜰 계획”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대전 내 한 대학교 앞에서 동네 오락실을 운영하는 조모(58) 씨는 어쩔 수 없이 점포를 운영하는 경우에 속한다.

“장사를 접어도 막상 할 게 없어서 하는 거지, 운영비 대는 것도 빠듯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90년대 말 IMF 시기부터 곳곳에 생긴 ‘PC방’에 손님을 뺏기기 시작했고, 가정용 게임기 보급도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10여년 전에는 오락실 내 인기 있는 게임은 줄을 서야 즐길 수 있었지만 어느새 옛날 얘기가 됐다. 오락실 내 빈 자리를 바라보며 조 씨는 “불과 7~8년 전만 해도 이 곳 근처에만 4곳의 오락실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곳만 남았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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