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가 끝났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제대로 된 인물을 뽑았는지 여전히 자신이 없다. 불량 정치인, 함량미달 후보, 엉터리를 뽑은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선거 때마다 그러했지만 이번 총선처럼 시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정도다. '나갔다 들어왔다, 붙었다 떨어졌다, 떠났다 돌아왔다"를 되풀이하는 뺑소니와 변절도 난무했다. 늘 그러하듯 입으로는 정치개혁을 외쳤지만 후진적 정치문화는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읍소와 선동이 넘쳐나고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했다.

새누리, 더민주, 국민의당까지 세 정당 모두 ‘새로운 세상, 민주주의를 국민과 함께 더불어 하겠다’고 외쳤지만, 저마다 나에게 권력을 달라고 외친 색깔없는 선거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투표를 해야 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했기에 어쨌든 투표를 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떠올려 봤지만, 모든 권력은 우리가 아닌 애초부터 그들에게 있었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는 또 국민의 뜻과 달리, 그들의 이름으로 또 한번 속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늘 선거 때가 되면 “이번엔 속지 말자”고 다짐해보지만, 또 속으면서 울분을 토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선거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뽑은 선량(選良)을 믿을 수밖에 없다. ‘부자가 되려면 곳간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과 달리, 우리는 또 그들에게 곳간 열쇠까지 맡겼으니, 그들이 제발 생선을 탐내는 고양이가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선거 때마다 우리에게 읍소하는 것처럼, 우리가 4년마다 그들에게 희망을 갖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하기야 그들이 그 깊은 뜻을 알았다면 이 땅엔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4년 전에도 그러했고, 8년전에도, 그 훨씬 전에도 이 나라를 최고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었는가. 물론, 게 중에는 고양이로 비유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할 진정한 선량도 없지 않다. 낙선자 중에도 진짜 뽑아줘야만 했던 보석이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무언가에 얽매여 비단 대신 삼베를 골랐다면, 이미 버스는 떠나고 없다. 그러나 낙담만 할 필요도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던 지역색을 조금은 벗을 수 있었으니 그만하면 됐다. 7선을 꿈꾸는 이나, 대권을 바라보는 이도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이 되어 민심의 매서움을 알았을테니 그만하면 못된 농사는 아닌듯 하다.

절망 대신 희망을, 낙망 대신 소망을 떠올려 보자. 정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마저 버리면, 국민들만 현기증이 날테니까 하는 말이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19대 국회가 저물었다. 20대 국회는 제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도록 연부역강(年富力强)의 활동을 기대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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