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
[반려동물 이야기]

기적처럼 하룻밤 사이에 벚꽃이 만개했다.

봄볕을 쪼이다 보니 12년째 나와 살고 있는 반려견 초이와 나의 두 아이와 다 함께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동시에 그 시절의 봄날과 함께 한 또 한 녀석이 떠오르는데 바로 내가 인턴을 하면서 처음 봤던 케이스의 주인공 백구이다.

백구는 엄청 요란한 싸움소리와 함께 병원에 내원했는데, 산책 중에 어린아이를 물어서 끌려온 그 녀석은 물린 아이의 부모님과 백구의 보호자 사이에 오갔던 고성으로 더욱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녀석이었다. 이 백구가 광견병에 걸렸는지를 모니터링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첫 임무였다.

병원 로비에서 꽤 떠들썩하게 시시비비가 붙었고,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이 일을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아직도 시큰하다. 광견병의 여부보다는(사실 지난 16년간 광견병 양성인 사례는 보지 못했다) 목줄을 착용하지 않고 혹은 입마개를 하지 않고 그 큰개를 데리고 다닌 반려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어찌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겠는가? 나도 좁은 공간에서 사는 내 반려동물들에게 자유를 좀 만끽하라며 넓디 넓은 잔디에서 뛰어 놀게 하고 싶기도 하고, ‘내 개는 특별히 똑똑하고 순해서 목줄이 없어도 내 옆에 잘 따라오는 이 스마트 함이여~!’하며 과시하고도 싶은,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반려인(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간) 내 개가 바로 견공계(犬公系)의 아인슈타인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사람 모두가 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이쁘고 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작고 어린 강아지조차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주변에도 꽤 많은 것으로 보아도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사실쯤은 이제 익히 알게 됐다.

사실 어느 시점에서였던가. 곧잘 데리고 다니던 공원에서 더 이상 반려동물의 산책을 불허한다는 푯말이 붙어 있게 됐고, 반려동물들을 데리고 다닐 곳이 점점 사라져가니 대체 어딜 거닐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막상 그 이유를 들어보면 그 또한 타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다니면서 발생하는 분변의 발생하는 혐오감과 위생문제, 아이들도 같이 뛰어 놀아야 하는데 똥으로 얼룩진 잔디, 그리고 간혹 개가 사람을, 큰 개가 작은 개를 물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의 사례를 들어 금지하게 한다니 마음은 씁쓸하지만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더 넓고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라며 쓸쓸히 공원 앞에서 되돌아와야 했던 그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사실 반려동물이란 용어가 '애완견'이라는 말을 대체하게 된 지금의 시점에서 내 가족을 아끼는 심정으로, 반려동물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 분들을 더 많이 뵐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나 또한 같이 산책하고 싶은 개와 함께 살고 있기에 이제는 반려동물 산책에 대한 인식이 새로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사실 예전보다는 반려동물 문화가 많이 향상되긴 했다. 이젠 거의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목줄 산책은 물론이며, 배설물을 치우기 위한 비닐장갑과 비닐봉투, 휴지 등을 들고 산책에 나서는 것은 기본 에티켓이며, 대형견들에게는 입마개를 채워서 다니는 분들을 그렇지 않은 분들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이 분들의 심정 또한 단순히 사고 예방이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환경적인 위생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며,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 향상, 더 나아가 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와 함께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 할 반려동물이 보다 나은 환경과 사회적 인식 속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보호자이자,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반려인들이 기본적인 에티켓과 넘치는 배려를 장착하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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