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금속성 촉수가 아침을 깨운다.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다.

딱딱한 손가락 관절이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는데 저리다. 그가 오늘 하루 마셔야 할 물의 양을 확인해준다.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서니 피부상태까지 체크한다. '알파고2'가 아침식사로 계란프라이를 세팅한다. 반숙을 싫어한다고 누차 얘기했건만 완숙과 반숙의 경계를 모른 체하고 있다. 정원에선 잔디 깎는 로봇이 잡초의 생장점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균일한 길이로 커터를 날린다. 자동차는 제 스스로 시동을 걸어 냉온의 온도를 맞춘다. 운전할 생각이 없는 난, 그냥 조수석에 앉아 때 이른 아침의 시간 속으로 질주한다.

▶회사에 출근해 앉아있으니 '알파고3'가 전날 영업실적을 데이터로 보여준다.

흠잡을 데가 없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인공지능 기계'를 부숴버릴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완벽하다. 컴퓨터에 이달의 목표와 타사의 실적을 넣었더니 소수점 단위까지 명쾌하게 답을 내린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진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말 그대로 할일이 없다. 지나가던 '알파고4'가 조소 섞인 목소리로 툭 내뱉는다. '인간들이란, 돈 먹고 똥 싸는 기계야.' 멀리서 '알파고5'가 근무태도를 감시하듯 눈을 부라리고 있다.

▶목로주점에 앉아 술을 한잔하는데 서빙이 예사롭지 않다.

원더우먼처럼 생긴 여자가 안주를 던지듯 한다. 소머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아널드슈월츠제네거처럼 생긴 인간이 나타나 인상을 쓴다. 터미네이터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시대가 저물고, 로봇·인공지능 시대가 오고 있다. 똑똑한 인간들이,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 뒤통수를 맞으니 결론적으로는 자충수다. 4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 문화의 정수' 바둑이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었다. 1000번 이상 공식 대국에서 승리하고, 세계대회서 18번 우승한 바둑천재의 '묘수'도 인공지능의 '술수'에는 그저 '인간'일 뿐이었다.

▶인간은 금세 지친다. 조금만 충격을 줘도 겁을 먹는다.

조급해하고 당황하며 흔들린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겁먹거나 지치지 않는다.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는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감정'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일말의 두려움을 갖는 것은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는) 함의에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주인'에서 '하인'으로 바뀌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이다. 정치의 계절, 곳곳에서 무수한 수(手)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놓는 포석들이 한없이 가엾다. 묘수라고 놓는 돌이 악수(惡手)다. 고수인 척하지만 하수이고, 하인인척 굴지만 주인행세를 한다.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공감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가소롭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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