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장
[경제인칼럼]

지금처럼 먹을거리가 넘쳐나지 않았던 필자의 공직 초년 시절, 단골 대폿집의 술안주에는 재탕이라는 것이 있었다.

재탕이라는 메뉴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두부전골이던, 곱창전골이던 안주를 하나 시켜서 건더기를 다 건져먹고 요즘 말로 리필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모 재탕”하고 외치면 군말 없이 묵은 지에 두부를 뭉텅뭉텅 썰어 넣어주던 대폿집 이모의 넉넉한 인심이 그리워진다.

가끔은 남은 음식이 재탕의 재료가 되기도 했지만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내어주던 대폿집 이모는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젊은 주당들과 이모 사이에는 신뢰, 규범, 관계망(network) 등을 구성요소로 하는 초보적 수준의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이 형성돼 있었던 것 같다.

사회적 자본은 기존의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사회일수록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진다. 특히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 유형으로 신뢰가 있음으로써 관련 행위자들이 협동할 수 있고 감시와 통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현 정부의 운영 패러다임인 정부3.0 역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라는 합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알권리 확대와 공정한 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원산지표시제 또한 20여년이 넘는 연륜이 쌓이면서 이제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2월 3일부터 원산지 표시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표시방법의 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번 원산지표시제 주요 개정내용은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대상 품목 확대 및 표시방법 개선. △농수산물 가공품 원료의 원산지표시 강화. △배달앱 등에서 조리음식을 통신판매 할 때 원산지표시 방법 개선 등이다. 이번 개정내용은 부처 간 소통·협력 및 민간참여 확대라는 정부 3.0 취지에 맞게 부처 간 긴밀한 협력과 관련 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마련했다.

달라지는 원산지표시제의 자세한 사항은 농산물품질관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관련 당사자들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바뀐 규정을 꼼꼼히 챙길 필요가 있다. 아울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이다. 시민사회의 능동적 참여와 격려 또는 질책이 올바른 정책을 이끌어 내고 그러한 정책이 시민사회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환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때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주점에서 더 이상 재탕을 요구하지 않지만, 30년 전 대폿집 이모의 재탕이 사무치게 그리운 오늘 저녁엔 그 때 동료들을 불러 모아 대폿잔이라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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