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전국시대다. 일예일능(一藝一能)에 뛰어난 자는 모두 실력으로 출세해 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위나라의 빈곤한 가정에 태어난 범수도 종횡가가 되려고 결심한 사람이었다. 하나 아무리 실력주의 세상이 왔다고 해도, 씨도 이름도 없는 사나이가 출세의 실마리를 잡는 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먼저 고향에서 중대부인 수가(須賈)에게 사관(士官)했는데 귀국 후 수가가 위나라의 제상인 위제(魏齊)에게 있는 일 없는 일을 나쁘게 고자질 했으므로, 야단이 났다.

"너는 제나라하고 통하고 있었지?" 하고 곧 부하에게 명해서 지독하게 매질을 한 다음, 거적에다 싸서 변소에다 집어넣는 형을 가했다. 범수는 틈을 보아 보초병을 매수해서 탈출, 구사일생으로 친한 친구 정안평의 집에 잠복하고 이름도 장록(張錄)이라고 고쳤다. 밤을 틈타 찾아온 장록을 보고, 왕계는 갖은 고생 끝에 정과 함께 본국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위나라 장록선생은 천하의 외교관입니다. 진나라 정치를 비판해서 진왕의 나라는 누란(累卵)보다 위태롭다'고 했으나, 나를 채용하면 귀국은 안태하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서신을 울리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기회가 없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생을 모시고 온 신의 이유입니다."

진왕은 이 불손하기 짝이 없는 손을 후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전국시대의 왕자답게 별로 처벌할 생각도 하지 않고, 우선 하객(下客)으로서 머물게 해두었다. 위여누란(危如累卵)과 같은 나라의 어려움보다 평화통일로 만만세 계속되어야 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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