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 충북본사 정치부장
[데스크칼럼]

논란끝에 여야가 선거구 획정에 전격 합의한 지난 23일 우리는 국회의 두 얼굴을 목격했다. 바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과 '필리버스터'(filibuster)다. 시차도 없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 이날 국회의 모습은 우리의 정치현실을 가늠케 한 장면들이다.

선거구 무법 사태에 대한 비판 여론에 귀를 막고 있던 여야는 국회의원 정수는 300석을 유지하되 지역구 숫자는 현행보다 7개 늘어난 253개, 비례대표 숫자는 그만큼 줄어든 47개로 확정했다.

문제는 '게리맨더링' 우려다. 게리맨더링은 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말한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는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분할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전설상의 괴물 샐러맨더(Salamander)와 비슷해 이를 게리(Gerry)의 이름과 합한 게리맨더(Gerrymander)라고 불렀고, 이후 이 같이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를 막기 위해 선거구를 법률로 정하게 하고 기본적으로 행정구역의 경계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즉, 선거구의 인구 기준보다 인구가 조금 미달하는 시·군·구의 선거구를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선거구의 일부를 떼어 선거구의 인구 기준을 약간 상회하게 인위적으로 구획하거나, 행정구역의 경계가 접하지 않은 시·군·구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 것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충북의 경우 인구가 모자라는 보은·옥천·영동선거구에 괴산 등 다른 선거구를 떼어 붙이는 방안이 유력해 ‘게리맨더링’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보은·옥천·영동 선거구와 괴산은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환경, 지리적 여건, 경제·사회생활, 교육·문화, 주민 정서가 전혀 다른 지역이다. 괴산과 접하는 보은의 접경구간은 2.5㎞에 불과하고 이 마저도 높은 산으로 막혀 왕래 자체가 어렵다. 이 같은 상황이 감안되지 않고 지역구 유지를 위해 떼다 붙이려다보니 반발을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96년 제15대 국회 선거구 획정 당시에도 국회는 옥천·보은·영동 선거구를 옥천군 선거구와 옥천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보은군·영동군 선거구로 분리했는데 이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져 다시 합쳐진 사례도 있다.

이날 벌어진 또 하나의 장면은 '필리버스터'다. 의회 안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에 대해 더민주가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국회법에 규정된 필리버스터라는 칼을 뽑아 든 것이다.

더민주는 하루에 5명씩 조를 편성해 24시간 논스톱으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법상 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3월 11일까지 토론이 가능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선거법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26일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무제한 토론이 종료되면 곧바로 표결을 해야 한다.

결국 의사진행을 막기위해 무제한 토론에 들어간 더민주나 여야 협의없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국회의장이나 정치개혁과는 한참 먼 경우다. 국회가 보여준 이날의 두 모습은 결국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과거 정치로의 회귀를 다시한번 상기시킨 씁쓸한 경험이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