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학창시절 7할은 자전거통학을 했다. 자전거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항상 앞선 풍경보다 뒤처졌다. 종아리의 근육은 찢어질듯 팽창했지만, 생각의 근육만큼 질기지도 않았다. 왜 두 팔과 두 다리의 동력이 필요한지 때론 지쳤다. 운전면허증을 따던 날, 난 대학 합격했을 때보다도 기뻐했다. '애마'가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생애 최초 자력으로 자동차를 구입했다. 당시 50만원을 주고 '포니2' 중고차를 샀다. 바퀴가 달려있어 자동차였지, 사실은 좀 더 빠른 '달구지'였다. 하지만 애인을 옆자리에 태우고 의기양양 전국을 주유(周遊)할 만큼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애마'는 30만원에 팔려갈 때까지 나의 신주단지였다.

▶택시운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운전이 재미있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활은 너무 고달팠다. 하루 4만7000원(회사납입금)을 벌기 위해 12시간 꼬박 일을 했다. 당시엔 수동기어(스틱)여서 무릎관절이 망가졌다. 더구나 욕심이 나서 하루 24시간 일을 자청했을 때 8만원의 사납금은 너무 과했다. 끼니를 거르면서 액셀러레이터와 클러치를 밟아대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했다. 공치는 날이 많았다. 때문에 몇 천원 손에 달랑 쥐면 새우깡에 깡소주를 마셨다. 고단한 노동의 한풀이이자 뒤풀이였다. 택시운전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기아자동차 '프라이드'는 늦은 밤, 길거리 레이스 도중 폐차 신세가 됐다. 급커브에서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 것이다. 생애 최초의 단독 차(車 )사고였다. 물론 혼자 달리다가 사고가 났으니 혼자 대가를 치렀다. 세 번째 자동차 '세피아'는 악랄한 시민에 의해 훼손됐다. 누군가가 보닛부터 트렁크까지 낙서를 해놓았던 것이다. 그날의 그 흠집은 오래도록 가슴에 흔적처럼 남았다. 아니, 닦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상처로 남았다. 이때부터 '애마'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피아는 리비아로 수출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內戰)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 대한민국 도로에선 2100만대의 자동차가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보고 돌진하는 이 게임에서는 충돌을 피해 먼저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치킨(겁쟁이)이 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게 딱 이런 상황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도로는 소화불량이고, 운전자는 양심불량이다. 무질서하고,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운전대를 잡는 순간 펄펄 난다. 한때, 나 또한 레이스를 좋아했지만 교통지옥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에서 운전버릇을 고쳤다. 그곳은, 아무리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저속기어의 세상이었다. 난 서서히 달리는 법을 잊었고, 길을 잃었다. 치킨게임에서 스스로 내려앉았지만 지금도 서행을 후회하지 않는다. '앞서가는 1인자'가 더 불안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재필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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