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담배연기가 창백하다. 새벽녘 조깅을 끝내고 한숨을 돌리는데, 왜 담배 생각이 간절한지 이율배반적이다. 간헐적 유혹이고, 치명적 자학이다. 더더구나 이른 아침, 공복에 넣는 연기는 본의 아니게 달다. 폐활량을 죽이는 생명단축의 연소가 살아 꿈틀거린다. 새벽의 색깔과 연기의 색깔, 그리고 몸이 치받는 모종의 색깔은 같다. 다소 과장된 듯한 이 욕망의 원죄를 따져보면 주체가 모호하다. 흡연의 가해자는 본인이다. 그 누구도 담배를 권하지 않았다. 어릴 적 뒷골목에 숨어든 짝패들이 살짝 연초(煙草)를 건넸지만 불을 댕긴 적은 없었으니, 끽연의 원류는 자충수다. 25년 간 20만 개피의 연소는 본인의 불찰인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흡연을 불 지르는 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담배를 '맛있게' 만들어 내다판다. 어떻게 하면 궐련을 좀 더 많이 팔지 궁리한다. 향기와 니코틴 함량, 그리고 담뱃갑의 디자인을 바꿔가며 교묘하게 유혹도 한다. 심지어 저타르 담배를 만들고, 특수종이와 특수 필터를 발명해 상술에 이용한다. 그리고 많은 이문(利文)을 남긴다. 바보 같은 애연가들은 4500원을 기꺼이 바친다. 아, 불을 붙이는 순간, 우리의 습관성과 의존성은 궐련과 함께 타오른다. 니코틴의 누런 독소는 폐의 가장자리를 검게 물들이며 애간장을 태운다. 타는 것은 폐가 아니라 마음이다.

▶이때부터 국가는 또 다른 '사기'를 친다. 흡연자들을 희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후두암 1㎎ 주세요, 폐암 하나 주세요, 뇌졸중 2개 주세요." 국가는 '이래도 안 끊을래?'라며 금연홍보영상을 무지막지하게 틀어댄다. 담뱃값을 올려 세금을 4조원이나 더 걷고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뒤통수를 친다. '병' 줄때는 언제고 '약'을 주는 척 하니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차라리 담배를 팔지 말든지, 정부가 하는 일이란, 자고로 치사하고 야비하다. 국가가 담배를 파는 건 매춘이다. 담배 몸뚱이를 팔아, 세금을 걷으니 매춘이다. 매춘이기에 끊으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

▶금연에 수십 번 실패한 자는 오늘도 창백(蒼白)에 대고 허무를 피운다. 우리가 스스로 구입한 질병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사람을 항우울로 몰아간다. 죄 없는 엄지와 약지는 그 냄새를 살 전체로 전염시킨다. 국가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서 담배를 팔고, 국민은 담배를 안 피우려고 하면서 담배를 산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동시에 발뺌한다. 수명과 단명 사이의 어정쩡한 갈림길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다. 애연가는 심약하고, 국가는 그 심약함을 노리고 몸속에 불순물을 주입한다. 담배의 기억을 상실시키는 지우개가 필요하다. 생각을 덜어내는 지우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맛있는 담배'를 또 사게 될 것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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