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처음 맞이하는데 웃어야죠"…고속도로 요금정산소서 설 맞는 박영남씨

쌀쌀한 날씨에 위는 춥고, 아래는 더웠다.

3.3㎡(1평) 남짓한 부스 바닥에는 소형 난로가 있었지만, 끊임없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는 차량 때문에 창문을 닫고 잠시라도 난로의 온기를 느낄 여유는 없었다.

청주시 석소동 경부고속도로 청주톨게이트에서 설 귀성객을 맞이하는 요금 정산원 박영남(48·여) 주임은 찬바람을 맞아 손등이 빨갛게 부르텄지만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박 주임은 "명절에는 교통 정체로 가까운 거리도 운전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짜증 내는 고객이 많다"면서 "웃는 모습으로 반겨주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통행권과 요금을 받고,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챙겨 운전자에게 내미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초면 충분했다.

하지만 16년차 베테랑의 능숙한 일처리에도 귀향길에 지친 운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험한 말을 쏟아내는 운전자들도 있다.

이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차량은 하루 평균 3천대(하이패스 제외). 명절이면 통행량이 20∼30% 정도 늘어난다. 명절 연휴에 남들처럼 쉬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데 일도 평소보다 많으니 훨씬 고되다.

"그래도 늘 친절하고 밝은 기운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고향에 와서 처음 보는 사람이 저인데 기분 상하면 안 되잖아요"

박 주임의 톤이 높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경상도 억양이 묻어났다. 하루 8시간 3교대로 일하는 그는 이 일을 시작하고나서 명절에 한 번도 고향인 경북 영주에 가지 못했다.

박 주임은 "병으로 걷지도 못하는 친정어머니가 고향에 있는데, 명절에 항상 근무하는 처지라 찾아뵙지 못하니 늘 죄송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맏며느리이기도 한 박씨는 이번 설에도 친정을 가지 못한다. 시댁인 청주에서 주말에 명절 음식 준비를 하고, 설인 8일부터 10일까지는 내리 근무해야 한다.

근무로 지친데다 차례 준비까지 하다보면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박 주임은 이날 1천명이 넘는 귀향객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몇몇 운전자들은 박 주임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박씨는 "고객이 눈인사라도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며 활짝 웃었다.logo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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