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날 귀성 행렬이 오늘 오후부터 본격화된다. 10일까지 긴 연휴기간이어서 보다 차분하고도 차서있게 뜻 깊은 명절을 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상을 섬기고 가족 간-이웃 간 유대감을 확인하는 민족고유의 세시풍속 가운데는 상호 역할 및 관계의 강화를 다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격의 없는 대화·소통 과정에서 민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정치의 거대 담론의 장이 펼쳐지는 건 당연하다.

정치권이 설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래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가족모임에서 응답자의 52.1%가 4·13 총선과 관련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초전인 20대 총선의 비중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민심이 한 솥 가운데서 뒤섞이면서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천심(天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메커니즘이다.

실로 오랜만에 국회가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포함해 40건의 법률안을 어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설 연휴를 앞두고 더 이상 국회를 표류시킬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기준과 쟁점법안 처리에 합의하지 못한 것을 두고 여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한때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쟁점법안과 연계하기 위해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미루었던 여당, 선(先) 선거구 획정 요구를 해온 야당(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네 탓 공방'이 오갔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한마디 탄식이 19대 국회의 무능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실질적으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일수도 있는 오늘 이 순간까지 국민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민생이 먼저냐', '선거 룰 확정이 먼저냐'라는 식으로 치킨 게임을 벌여온 여야의 안중엔 국민은 없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도 선거구마저 확정하지 못하다니. 자신의 정치적·정략적 입지만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한계를 본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나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국민 갈증을 부추길 따름이다. 올 설 민심은 어디에 포커스가 맞춰질까. 바로 이처럼 일그러진 우리의 정치 현실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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