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무관심에 더 혹독한 겨울 보낸다
개인정보 털려 빚지고 ‘묻지마 폭행’ 비일비재
경찰 신고해도 푸대접 다쳐도 의료급여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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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쯤 전 새벽에 자고 있는데, 머리가 번쩍하더라구요.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길바닥에 있는 모래주머니로 제 머리를 후려친 거였는데, 일어나 잡으려고 해도 그때는 멀리 도망간 뒤였죠. 경찰요? 얘기한다고 잡아주겠어요?”

31일 새벽, 대전역 인근 역전지하도상가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사회의 차가운 일면이 무섭다고 말했다. 비일비재한 취객의 폭행과 자신들을 대상으로 한 ‘벼룩의 간 내먹기’ 식의 사기, 만연한 무관심이 그것이었다.

대전시노숙인종합지원센터 활동가의 아웃리치(Outreach·기관을 찾지 않는 노숙인을 직접 찾아가는 지원활동) 동행차 찾은 대전역 일대 거리에는 노숙인들의 아픔과 상처,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노숙인들에 대한 철저한 무시였다. 한창 축구 한일전이 진행되던 시각, 철도역 대합실에는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노숙인들은 고독한 섬 마냥 힘 없이 벤치 위에 누워 있거나, 기둥 옆 바닥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시민들은 응원 사이 때때로 노숙인들을 혐오감 어린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대부분의 노숙인은 인적이 뜸한 대전역지하보도(동서관통로)나 도시철도 대전역사, 역전지하상가 등에 자리를 피고 잠을 청한다. 돗자리, 스티로폼 깔개, 어디선가 어렵게 구한 담요나 침낭으로 응급처치(?)를 하지만, 기자와 활동가를 맞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추위로 벌겋다.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다. 역전지하상가 한구석에서 동료 2명과 추위를 피하고 있던 한 노숙인은 취객이나 철 모르는 젊은이들의 노숙인 폭행이 자주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이 많다. 어떤 친구는 얼마전에 자는데 누군가 다리를 마구 밟았다더라”라고 전했다.

4달쯤 전 거리로 나왔다는 강모(54) 씨는 개인정보를 털렸단다. 강 씨는 “나도 모르는 새 휴대폰이 생기고 차도 생겼더라”라며 “관여도 안한 빚이 3000만원이 생겨버렸다”고 얘기했다. 경찰 등에 이를 얘기해도 바뀌는 건 없다는 게 노숙인들의 말이다. 강 씨는 “경찰에 얘기했는데, 돌아오는 건 없었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더 큰 문제는 몸이 다쳐도 병원행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숙인을 위한 의료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나 이 급여는 ‘노숙인 지정 진료시설’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 인근 공중화장실 앞에서 만난 이름 모를 노숙인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무척 아프다”면서도 병원에 가길 거부하고 있었다. ‘번거롭다’는 게 그 이유다.

노숙인지원센터 김의곤 소장은 “주위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노숙인들이 접근성도 떨어지고 이목도 많은 대형병원을 어려워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며 “비현실적인 정책은 노숙인에 대한 정부의 또 다른 냉대”라고 설명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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