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초년고생(初年苦生)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이 상투적인 말은 알고 보면 헛소리다. 고생을 해서 이루는 성취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게 백배 낫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다는 건, 계란이 바위에게 까부는 격이다. 누군가는 '7포 세대'(연애·결혼 등 7가지 포기)라고 자조하고, 누군가는 '헬조선'(hell朝鮮:지옥 같은 한국)이라고 절규한다. 한번 약자(弱者)는 평생 약자라는 신분 고착화의 절망 담론이 우리 사회를 휩쓴다.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를 향해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지는 않는다. 듣기 좋은 소리도, 잔소리로 변하면 흙수저들은 숟가락을 놓는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게 정치다. 스펙보다 열정을 가르쳐야하고, 학벌보다 여벌의 진정성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금수저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약자의 그늘이 없다. 계급사회에서 배워온 권력의 질서만이 엿보인다.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다. 흙수저의 비애를 모로는 자들이, 맨손가락을 빨면서 가슴으로 우는 사람의 심정을 알 리 없다. 아침저녁으로 하얀 테이블보를 깔고 은쟁반으로 식사를 즐기는 자들이, 어찌 흙냄새와 흙의 바탕을 알겠는가.

▶밑바닥은 눈물부터 차오른다. 밑바닥 정서는 '금수저들'의 밥을 오롯이 떠먹이는 원심력에 근거한다. 공부만 잘하면 어떤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금수저 정치’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이다. 정치는 공부가 아니다.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학습형 발상으로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메시아적 선언만 나열하는 습관은 흙수저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정치는 ‘머리만’ 똑똑한 사람이 아닌 ‘가슴이’ 똑똑해야 한다. 정치인의 질(質)은 정치의 질(質)이다. 정치 떠버리들은 민심을 잘 속인다. 잘 속으니 또 속이는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잘 속는다고 느끼겠지만, 속는 척 할 뿐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공적으로 돕는 게 정치다. 고로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정치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중력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심방, 우심방'에 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어야 한다. 임기가 끝나면 또 다시 선거에 도전하고 싶지 않아야 정상이다. 때문에 당연히 월급도 박하고 비정규직이어야 옳다. 절망이 지배하는 정치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는 법이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 최선을 다한 다음에도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건 정치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징징거리는 ‘금수저 정치’가 아닌, 희망을 주는 '흙수저 정치인’이 돼보라. 흙맛은 짜다. 눈물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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