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기획조사부장
[독자위원 칼럼]

우리나라 취업 준비생의 35%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한다. 9급 공무원의 경쟁률은 100대 1을 훌쩍 넘는다. 이공계 학생 중 가장 우수한 재원들은 우선적으로 의·치·약대에 지원한다. 인기 없는 대학의 의·치·약대에도 합격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하는 수 없이(?) 명문대 공과대에 지원한다고 한다.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들은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할 우수한 젊은이들이 안전한 직업만을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우수인력이 기업 활동에 투입되지 못하는 것이 경제에 결코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안전한 직업선택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직업인으로서 공무원, 의사, 약사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이다. 이들 직업군들은 큰 부를 축적하기는 어려워도, 이변이 없는 한 정년이 보장되고 부침이 없는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취업에 저당 잡힌 이른바 n포 세대에게 이만한 조건이 없다.

반면 창업을 통한 기업가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십중팔구는 사업에 실패한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수많은 실패 후에야 성공의 열매를 수확한다. 결국 안전운행보다는 창업을 통해 많은 소득을 기대할 것이냐의 판단 기준은 창업의 ‘실패확률’에 대한 인식이다. 그런데 젊은 인재들이 '실패확률'을 간과하고 있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거나 이공계 최고의 학업성적으로 의·치·약대에 합격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치밀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재원들이다. 즉 ‘명석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이 치밀한 계획 하에 선진기술로 무장하여 창업할 경우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하여 실패확률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20대의 정주영은 ‘실패전문가’였다. 4번의 가출과 수많은 실패 끝에 쌀가게 복흥상회를 열었지만, 1937년 전국적인 쌀배급제 시행으로 문을 닫고 만다. 곧이어 오픈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도 한 달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된다. 실패라는 단어에 익숙했던 정주영은 좌절하지 않았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무릎을 꿇고 빌린 자금으로 신설동에 무허가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서비스를 재 창업한다.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전신이다.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 페이팔과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는 혁신의 CEO로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은 실패전문가이다. 화성에 가겠다는 꿈 하나로 미국 최초의 민간 우주항공업체인 스페이스 엑스를 창업하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로켓발사를 무모하리만치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2008년 3번의 발사실패와 전기차 테슬라의 출시지연으로 힘들 때 머스크의 ‘실패’를 높이 평가한 NASA가 15억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지금은 가장 저렴하게 우주에 물건을 날라주는 유일한 민간우주업체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 10년간 발사 스케줄이 꽉차있다. 머스크는 "실패는 우리 회사의 옵션이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적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직원들에게 '실패를 강요'하고 있다. 실패의 경제학은 분명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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