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응답하라 1988(응팔)'은 드라마가 아니라 삶이다. 마치 이삿짐을 나르다가 우연히 열어본 박스에서 옛날 일기장을 발견한 듯하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건 역설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삶이 살만하지 않다는 증거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가족과 이웃 간의 정, 부모들의 애환, 어려움을 함께 견뎌내야 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가슴 밖으로 소환해낸 페이소스(Pathos)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잊고 살았던 추억의 가치를 끄집어내어 위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풍경이 명치끝을 뻐근하게 한다. 이들에게 직업과 신분의 귀천(貴賤)은 없다. 그저 한데 어울려 섞인다. 그 섞임은, 계산된 희석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다. 그 바탕의 원형질은 정(情)이다. 이들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라 단지 '고난'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동네 아줌마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신다. 안주는 '속풀이' 수다다. 김, 상추, 고구마부터 전복죽에 갈비찜까지 나눠먹는다. 라면과 짜장면, 치킨, 피자에 김치볶음밥과 총각김치를 곁들인 함박스테이크도 함께 빙 둘러앉아 먹는다. 누구든 물 좋은 명태와 꽃게, 고구마를 살 때면 푸짐하게 사서 집집마다 나눠주고, 당최 이상하게 생겨먹은 산삼주도 과감히 까서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한다. 적어도 아래윗집 한집 옆집 정도와는 음식을 보내면 빈 그릇으로 보내지 못해 다시 뭐라도 담아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이고 '나눠'이다.

▶아, 7080의 기억이 응답한다. 골목길에서 놀다가 엄마가 '저녁 먹어'라고 외치면 우르르 뛰어 들어가던 해질녘 풍경, 어머니가 '빨간약'(일명 아카징끼·머큐로크롬)을 발라주면 마치 총상이라도 치료받는 듯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들딸들…. 그래도 아이들은 등수나 환경에 상관없이 한데 어울렸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이웃사촌'이고 피붙이였다. 식구(食口)였다. 다 같이 둘러앉아 뭔가를 먹는 식구의 유대감은 인간 공동체의 본질이다. 이건 복고(復古)가 아니라 그리움이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기억은 추억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세상은 덜컹거린다. 심하게 덜컹거린다. 각박한 세상을 관통하는 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응팔'의 80년대는 내가 노닐던 청춘을 관통한다. 내가 거쳐 갔던 흔적과 겹친다. 앞으로도 세월은 가고 또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청춘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청춘에 대해 응답할 수는 있다. “안녕, 내 청춘이여~”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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