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새'는 이른 봄 남녘에서 날아와 번식하고, 가을에 남녘으로 간다. '겨울새'는 나그네새다. 북쪽 번식지와 남쪽 월동지를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통과한다. 떠돌이새(漂鳥)는 여름에 깊은 산지로 들어가 번식하고, 가을부터 봄까지는 평지에 내려와 생활하는 조류다. 철새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천적과 추위를 피해 번식하기 위해서다. 떼를 지어 이동하면 길을 잃을 확률도 줄어든다. 그런데 요즘 지구촌 철새들이 길을 잃어가고 있다. 철새가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집단의 죽음을 의미한다. 길은 곧 삶이고 방향이다. 머물렀던 둥지는, 안온한 기억을 더듬는 나침반인 것이다.

▶'인간 철새'들도 출몰하고 있다. 정치 철새들이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둥지를 옮겨 다닌다. 이성이 아닌 본능이다.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습성은 먹잇감 때문이다. 탈당과 분당, 합당을 통해 불온한 교배를 모의하고 '헤쳐모여'를 한다. 물론 탈당 명분은 변화와 혁신이다. 하지만 탈당하는 행위 자체가 구태다. 순혈(homo)을 포기하고 가면을 썼으니 잡종(hetero)이다. 당적 세탁은 변절이기도 하다. 지역 대표로 뽑아준 유권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변심이다. 자신을 키워준 둥지를 버리고 길을 찾아 떠나는 비행(飛行)은, 결국 길을 잃는 비행(非行)이다.

▶흔히들 '새대가리'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쥐어 터져도 돌아서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기 때문이다. 새대가리의 원조는 처음엔 닭대가리였다고 한다. 닭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가 맹금류가 하늘에 뜨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는 아무 '구멍'에나 무조건 머리를 들이민다. 몸통은 나와 있는데 대가리만 감추니, 감춘 게 아니다. 도망간 것 또한 아니다. 정치철새들도 '닭'과 닮았다. '철새'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둥지를 바꾸니 ‘닭’이다. 그 '구멍'이 제 몸에 맞지 않는데도 일단 들이대니 ‘닭’이다. 뻔뻔한 민낯을 드러내고 대가리만 감추니 ‘닭’이다. 그 저열한 몸통은 왜 못 숨길까.

▶저마다 '철새'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대충 봐도 철새다. 서민들의 온도와 정치의 온도는 다른 법이다. 얼굴에 까만 재를 묻히고 연탄을 나르는 그 '검은 봉사'에 서민은 감동하지 않는다. 얼굴에 밥풀을 붙이고 밥을 퍼주는 그 알량한 '흰 봉사'에 공감하지 않는다. 왜 평상시 가만히 있다가, 4년에 한 번씩 나와서 살가운 척 하는지 동감할 수가 없다. 살면서, 흙 한번 안 묻혀 본 사람들이 서민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는 신파(신파극)가 아니다. 언제까지 그들이 건네준 알량한 '밥'을 먹어야 하나. 언제까지 그 차가운 '연탄'을 때야하나. 정치가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민심의 죽음을 의미한다. 참으로 쓸쓸한 철새의 계절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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