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재발견18 거룩한 말씀의 회 수녀원]
대전 중구 목동 언덕 꼭대기
100년 역사가진 ‘수녀회 성당’
6·25때 정치수용소 강점돼
사제 등 수백여명 학살겪기도
소박하고 단아한 성당 내부
수도자들 겸손한 삶 느껴져

▲ 1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성당의 내부에서는 수도자들의 겸손한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2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은 중앙부에 높다랗게 종탑이 솟 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다. 3 성당 바로 옆 수녀 등이 손수 빚었을 수 많은 점토상들이 하느 님을 찬미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11-2.jpg
대전 시내에 이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또 있을까.

대전 원도심 중심부를 지척에 둔 중구 목동 언덕 꼭대기. 큰 건물이 없었을 과거에는 언덕 아래 저 멀리까지 굽어봤을 ‘거룩한 말씀의 회 수녀원’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룡역 인근 길에서 불과 150여m, 분명 온갖 차들의 소음이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붉은색 타일을 따라 길을 오르면, 발을 들이는 모두에게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을 안겨주는 곳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새하얀 하느님의 전당,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규모로는 대흥동 성당에 미치지 못하지만, 1921년 대전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된 ‘대전 최초 성당 건축물’로 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100년 가까운 긴 역사 탓일까.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등 근현대사의 아픔이 관통한 장소로도 전해진다. 특히 6·25 전쟁 당시에는 학살의 현장이라는 눈물 어린 과거가 서려 있다. 전쟁발발 후 8월, 공산당 충남도당 정치수용소로 강점된 이곳에서는 사제 11명을 비롯해 수백여명의 신자와 민간인들이 학살됐다.

수도원 건물 뒤 지금은 없어진 우물 등에 매장됐는데, ‘수복된 후 화장한 유골이 관 13개에 가득했다’는 말이 전해질만큼 애달픈 사연이 남아있다. 전쟁 직후 학살 피해자들의 선혈과 총탄 자국 등이 그대로 새겨지는 등 전쟁의 참상이 성당에 새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1958년 다시 문을 열고 이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로 양도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단아한 멋에 기품이 더해진 믿음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성당은 중앙부에 높다랗게 종탑이 솟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다. 성당 첨탑의 십자가, 고층 스테인드글라스는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들여왔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껏 관리가 잘 돼 빛을 발하고 있다.

조심스레 들어선 내부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약 80명이 채 안 되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수도자들의 겸손한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내부 벽면에는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다른 ‘십자가의 길’ 부조가 미사 참여자들을 굽어보듯 걸려있다. 부조는 총 14개인데,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들여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수녀원 내 곳곳에는 순백의 성모상과 프란치스코상,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전 방문 당시 세워진 기념비 등이 이곳의 가치와 경건함을 더하고 있다. 또 성당 바로 옆에는 수녀 등이 손수 빚었을 셀 수 없이 많은 점토상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신자들에게 열려있는 이곳의 미사는 매일 새벽 6시에 열린다. 다만 수도의 공간인 만큼 신자가 아니거나 뚜렷한 용무가 없는 사람은 방문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