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아뿔싸, 한해가 속절없이 가는 게 허망했나 보다. 12월의 끝을 부여잡고, 고주망태가 됐다. 1월보다 먼저 취했고, 12월보다 빨리 혼이 나갔다. 귀로(歸路)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듯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였다. 더욱 황망한 일은 ○○씨와 통화를 하다가 발을 헛디뎌, 아파트 화단으로 고꾸라진 거였다. 온몸이 흙 범벅이가 됐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흙 악취가 풍겼다. 지나가던 아가씨가 '괜찮냐'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또 손을 내밀었다. 또 괜찮다고 했다. 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데, 제 스스로 고꾸라졌단 말인가. "그래,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액땜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12월 31일 밤, 한눈을 팔고 걷다가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액정의 무사'를 빌었지만 찰나의 소망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액정에 큼지막한 금이 여러 갈래로 제 본연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 계획에도 없던 액정 수리비 14만원을 지불했다. 아, 이것도 액땜인가.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징크스와 머피의 법칙(일이 갈수록 꼬여,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은 ‘12월 절벽’까지 피를 말렸다. 여기에 든 액땜값만 한달치 월급이 넘는다. 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 '액땜의 난센스'는 분명 불온한 역주행이다.

▶반쯤 채워진 물 컵을 놓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 낙관론자고,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비관론자라고 한다. 낙관과 비관의 갈림길은 관점의 차이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 우린 '액땜' 핑계를 댄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잠시 쉬어가라는 징표라면서,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맞는 예방주사라면서 자위한다. 과연 그럴까. 액땜 후,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만 사실은 땜방할 일만 생긴다. 불확실성의 시대, 모종의 기운으로 일어나는 '액땜'은 그냥 액땜일 뿐이다. 액(厄)이란 모질고 사나운 운수다. 액을 액으로써 막는 액땜은 희생이 뒤따른다. ‘그래, 안 다쳤으면 다행이지’는 액땜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어야 할 불운일 뿐이다.

▶또 한해가 시작됐다. 또 얼마나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지난해의 고난을 생각하면, 이번 일 년의 신수는 무조건 좋아야한다. 미리 고난을 겪어 때웠으니 이유불문하고 좋아야한다. 하나를 잃었으니, 하나를 얻을 것이라는 위로는 받고 싶지 않다. 고꾸라져봐야 아픔을 아는가. 깨져봐야 상처를 아는가. 고꾸라지지 않아도, 깨져보지 않아도 새벽은 온다. 이제, 조깅을 하면서 돌부리를 쳐다본다. 스마트폰을 만지며 악력을 준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잊어버리기엔 저리기 때문이다. 아, 정신을 집중해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거늘, 액땜은 마음에 놓는 침(針)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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