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배재대 석좌교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인생에서 무거움을 선택할 것인지, 가벼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합니다. 무거움이란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단순한 일상생활도 철학적 사유를 담으려고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벼움은 진지함이 부족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선택을 하므로 배울 점은 없으나 즐겁고 유쾌하기는 합니다.

인생은 가벼움이든 무거움이든 선택의 연속입니다. 작게는 아침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며, 크게는 역사를 바꾸는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의 목숨을 건 결정, 쿠바 미사일 위기 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해상차단의 결정 등이 그것입니다. 결과보다도 결정자체를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위대한 까닭은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과 그 너머를 향해 닻을 올리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최초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정은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내리는 하나하나의 결정이 쌓여 개인과 조직 그리고 전체사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나 기업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책임 있는 자리의 사람들은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신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정을 하여 시행을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다음에는, 또 그 다음에는?, 하는 식으로 미리 충분히 숙고하여 결정해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소통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작은 소리도 진지하게 들으면서 자신의 의견도 겸손하게 얘기하는 소통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결정을 해놓고 설득하기 위한 소통이나, 명분 축적을 위한 들러리식, 형식적 소통은 아주 위험합니다. 내 실수는 다른 사람이 더 잘 보기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이 무엇이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을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나는 정직한가?’하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잘못된 결정을 해 놓고 그것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 결과는 뻔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면 옷이 점점 더 일그러져 입을 수 없게 됩니다. ‘천천히 갈수록 더 빨리 도착한다.’는 외국 속담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결정을 고치는 것보다는 시간이 덜 들고 최선이지만 잘못된 선택임을 확인하는 순간 빨리 중단하고 수습하는 것이 그래도 차선은 될 수 있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절해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폐된 뒤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하지 못하고 실기를 하거나, 결정을 잘못한 것이야말로 보복을 잉태합니다. 나폴레옹조차 피해가지 못한 시간의 보복은 어떤 지도자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선택’이라는 저서를 낸 스펜서 존슨은 한번 잘못된 선택이나 결정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선택이 도미노 게임처럼 다음번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결정이나 선택은 되돌리기 어렵고 더욱이 그것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고위직이 결정한 것일 때 그 피해는 국민과 시민이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삿된 결정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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