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2015년 10월 '단골'이라는 칼럼을 썼다. 잠깐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뒷골목에 허름한 단골술집이 있다. 땅거미 어스름 내려, 꽃등불이 켜지면 으레 습관처럼 기어든다. 그런데 '거래'를 뚝 끊었다. 막판에 시킨 소주 한 병 값(3000원)을 외상으로 달려고 했는데 여주인이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다. 근 10년 간 기천만 원은 족히 갖다 바친 곳인데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그녀는 단골을 잃었고 난, 단골술집을 버렸다…." 칼럼의 반향은 독했다. 어떤 독자는 이메일을 통해 '3000원 외상이라니, 너무 찌질하다'면서 꾸짖었다. 난 사과했다. 그리고 칼럼을 접을까 깊이 고민했다.
▶그로부터 한 달 20일 만에 비슷한 류(流)의 칼럼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평소 글을 맛깔나게 쓰기로 정평이 났던 기자가 간장 두 종지 때문에 '밥집'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집에 갔다.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 종지가 두 개뿐이다. 일행은 4명인데 간장은 2개. 종업원을 불러 간장 종지 2개를 더 달라고 했더니 2인당 하나라면서 거절했다. 당장 간장 한 박스를 주문해 이 집에 '킵'해놓고, 다음에 오면 대접에 간장을 부어 먹을까도 생각했다. 나는 그 중국집에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간장 두 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그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 이 칼럼의 피드백은 독했다. 네티즌은 댓글로 꾸짖었다.
▶얼마 전 거래를 끊었던 그 단골집 앞을 지나가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간판이 바뀌고, 주인까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아, 살 속까지 시려왔다. 마치 '3000원 사건' 때문에 그녀가 떠난 것처럼 자격지심마저 들었다. 3000원 외상과 간장 두 종지, 그리고 산타의 비애…. 난 단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끊은 거였다. 제 몸에 난 상처만 봤다. 마음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남루한 옹졸함이 눈사람처럼 바닥에 흘렀다.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또 한 번 사과했다. 눈이 내릴 듯 하늘이 무거운 크리스마스이브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