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분설은 가루눈이다. 온도가 낮을 때 내린다. 분설은 끊기가 없어 잘 뭉쳐지지 않고, 옷에도 잘 묻지 않는다. 젖은 눈은 습설이다.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잘 뭉쳐진다. 진눈깨비는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는 것이다. 눈 같기도 하고, 비 같기도 하다가, 다시 눈도 비도 아닌 혼혈의 정경을 띤다. 꽃술이 비에 젖어 그 무게감을 못 이기고 떨어지는 꽃비 같다. 꽃비는 아름답지만 땅에 닿는 순간 진흙탕을 만든다. 때문에 떨어지기 전까지만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낙화(落花)하면 쓰레기다.

▶민들레(포공영)는 쓸모가 많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잎은 먹고 뿌리와 줄기는 약으로 쓴다. 그런데 민들레란 녀석은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귀염을 받지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난다.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또 100포기가 돋아난다. 어찌되겠는가. 마당의 예쁜 꽃 한 송이는 졸지에 흔해빠진 잡초 신세가 된다. 연이은 세포분열은 사람의 정신을 짜증세포로 분열시킨다. 결국 쓸모 많은 민들레는 잡초 이전까지가 아름다움이고, 그 다음은 쓰레기다.

▶인간 DNA를 늘어놓으면 대략 2m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99.9% 이상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단지 0.1% 미만의 차이가 종족, 외모 같은 '구분'을 만들어낸다. 32억개 염기 중 98%는 쓸모가 없는 '정크(쓰레기) DNA'다. 하지만 '정크 DNA'의 80%는 암, 심장병, 정신질환 등 각종 질병과 돌연변이를 파악하는데 긴요하게 쓰인다. 쓰레기가, 쓰레기로 불리기 이전에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버려지는 것과 버리는 것으로 나뉜다. 스스로 버려지고 싶은 쓰레기는 없다. 단지 보는 이의 관점에서 쓰레기도 되고, 쓸모도 된다. 물론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엔 쓰레기 천지다. ‘쓰레기’라고 손가락질 하는 자도 쓰레기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도 쓰레기다. 받아먹을 줄만 아는 자도 쓰레기, 자만에 가득찬 자도 쓰레기다. '대체 무슨 인간이 저 모양이야'라고 욕하지만 그도 누군가에겐 욕을 먹고 있다. 분노의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인간의 내면은 외면에 나타난다. 반대로, 외면을 가장하면 내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절대 속지 않아'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더 잘 속는다. 사람은 제 수준의 정치를 갖는다. 사람은 제 수준의 정치인을 만난다. 불리하면 냅다 ‘철수’만 하는 사람도 문제고, ‘문제(문재)’만 일으키는 사람도 문제다. 국민을 버린 국가도 문제고, 그걸 관망하는 무리들도 문제다. 난 정치가 거느리는 정한(情恨)을 혐오한다. 결국 정치의 정한은 버려지는 것과 버리는 것으로 구분된다. 버려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국민을 버렸다. 버려지면 안 될 국민들이 버려졌으니, 그들이 쓰레기다. 참담한 정치의 오후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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