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배재대 석좌교수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있다.”로 시작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불륜 여인의 자살’이라는 객관으로부터 촉발된 이 작품은 장장 1700여 페이지에 15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서사문학으로 변모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현 시대의 유럽 문학 가운데 어떤 작품도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고 극찬했을 만큼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10여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는 등,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또 영국의 시인 매튜 아놀드가 “사실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를 예술작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듯이, 이 소설은 사랑만 다룬 것이 아니라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사회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기본구성은 안나와 카레닌,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라는 세 쌍의 남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회의 관행과는 달리 상류사회 여인의 불륜을 다룬 충격적인 작품이었고, 안나를 통해 본능과 사회규범 사이의 갈등을 잘 묘사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안나의 결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거의 완벽한 남자입니다. 잘 나가는 군인이었고, 관료적이고 외교적이며 다른 사람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는 매너 있는 남자였습니다. 안나 또한 카레닌이 고른 아주 완벽한 여자였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데다가 집안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안나는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잘 생긴 브론스키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계기가 있습니다. 물론 브론스키는 안나를 처음 만날 때 “귀염성 있는 얼굴에서 뭔가 유달리 정답고 부드러운 것을 느꼈다.”고 묘사하지만, 같이 탔던 기차에서 내릴 때 역무원이 사고로 죽은 것을 보고 안나가 미망인을 안타까워하자 이를 목격한 브론스키는 역무원 가족에게 선뜻 200루불을 내줍니다. 이 행동은 당연히 안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됩니다.

만천하에 보란듯이 안나는 브론스키의 딸을 낳습니다. 그런데 둘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실제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불신과 갈등과 증오가 이어지다가 급기야 안나는 죽을 결심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분전환을 위해 친척집을 방문했던 안나는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집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옛 추억이 서린 빵집과 간판을 회한에 차 바라보고, 두 처녀와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신의 처지와 대비시켜 보다가 불현듯 기차역으로 달려가 화물열차에 몸을 던집니다.

자신을 죽임으로써 브론스키를 괴롭힐 수 있다는 보복심리에서 시작된 자살에의 결심은 불행히도 매우 우발적으로 결행됐습니다. 결국 사랑과 집착, 의심과 갈등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행보가 불륜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으나, 남편 카레닌으로 대변되는 현실에 대한 모반이었다면 상대가 브론스키가 아닌 누구여도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부도덕하고 격정적인 사랑으로 파멸에 이르는 안나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신뢰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레빈과 키티라는 부부를 대비시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즉, 주인공은 안나지만 톨스토이가 선호하는 인물은 레빈이지요. 레빈과 키티의 행복을 그리며 소설이 끝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겁니다.

이 작품은 1870년대에 쓰여졌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는 수많은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가 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건 별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어떤 삶을 살지는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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